내가 제일 책을 많이 읽었던 때는 고등학생 때였다. 국어선생님이 담임이시라 반 아이들에게 독서카드를 만들게 하시고 1년 동안 100권을 읽는 계획을 실천하게 하셨다.
처음엔 권수를 채우기에 급급해 알고 짧은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선생님의 의도대로 나는 책읽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름방학 즈음에는‘적과 흑’이며 ‘여자의 일생’‘죄와 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길고 지루한 책에까지 흠뻑 빠져 산 기억이 생생하다.
괴롭게 시작했던 그 읽기 계획은 지금까지 살며 가장 감동적인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로 인해 읽기의 소중함을 배웠으니 자칭 ‘To Sir with Love’의 주인공인 시드니 포이티에와 닮았다고 하시던 담임선생님께 감사와 사랑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고 나면 바로 읽은 책의 주제와 가치가 어떻다며 의견을 내던 내가 성인을 위한 동화집인 앤 슬리벤의 ‘지나쳐간 사람들’이란 책을 대학생이 되어 읽고도 그 뜻이 무엇인지 몰라 여러 사람에게 그 책을 사주며 읽게 하고 그 뜻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다니던 생각이 났다. 확실히 공감이 되지는 않았으나 여러 사람들의 생각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다 수년이 지난 후에야 이해를 하게 되었었다.
새롭게 그 책을 떠오르는 이유는 요즘 특수교육 개론 강의를 하면서 그 내용이 어떻게 장애학생을 돕는 좋은 방법을 설명하는 것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졸탁동시’를 다르게 해석하는 방법을 들었다.
졸탁동시가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올 때가 되면 안에서 부리로 쪼고 그 소리를 들은 어미닭이 밖에서 동시에 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모가 자녀 교육의 적절한 시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부화되어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 어미닭이 안에 있는 병아리에게 “네가 네 힘으로 깨고 나오면 내일 병아리로 세상 구경을 할 것이고 깨고 나오지 못하며 계란 프라이가 될 것이다”라고 엄포로 설명하는 말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두려움을 느꼈다.
‘지나쳐간 사람들’은 파도에 밀려 모래사장으로 나오게 된 물고기가 목숨이 위태로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어떤 사람은 숨을 깔딱이며 외치는 물고기의 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너무 바빠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숨이 넘어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장황한 설명을 한다.
물고기에게 왜 그런 위험에 처하게 되었으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한 후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잘 생각해 보라며 자리를 떠난다.
물고기는 그 사람의 말에 동의를 하면서 점점 숨이 가빠지고 힘이 빠져 죽어버리고 만다. 숨을 거둔 물고기는 힘없이 파도에 의해 바다로 쓸려가게 되고 물고기를 다시 보러온 사람은 물고기가 사라진 모래사장에서 역시 자신의 말이 그 물고기를 구했다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장애인을 도와주는 방법에는 ‘도움의 체계’라는 것이 있다. 자연적인 환경에서 제스처 정도의 낮은 수준의 도움부터 직접 몸에 손을 대어 도와주는 강도 높은 도움의 수준까지로의 체계를 정하고 장애인의 필요에 적합한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필요 이상의 도움을 주면 장애인에게 오히려 의존성을 높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울 기회까지 박탈하는 일이 되며 장애인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까지 스스로 해내야 한다고 닦달을 하는 것은 무력감과 무능함을 경험하게 하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교육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후자의 경우보다는 전자의 경우가 흔하다. 특히 부모의 과잉보호가 의도와는 다르게 장애아동이 성장하고 배워야 하는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김효선<칼스테이트 LA특수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