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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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업/ 스타이브센트고교 12학년 고상원 군

2010-09-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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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문턱 갔다오니 모든 것이 감사해요”

어처구니없는 의료사고로 14세 어린나이에 한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내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남다른 경험을 겪어야만했던 고상원(17·스타이브센트고교 12학년)군. 지금은 검게 그을린 피부색에서부터 건강한 이미지가 풀풀 풍겨나지만 불과 2년 반 전만 해도 오늘과 같은 현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는 고교 입학 후 두 번째 학기를 맞은 9학년 봄 학기, 2008년 2월이었다.

방과 후 집에 귀가한 뒤부터 시작된 복통은 결국 급성 맹장이란 진단을 받았고 때마침 휴가를 간 주치의를 대신해 다른 의사에게 수술을 맡긴 것이 화근이었다. 이틀이 지나자 몸은 평소의 두 배로 부어있었음에도 의료진은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첫 수술 3일 만에 또 다시 수술용 칼을 들었다. 하지만 몸이 지나치게 부어 봉합도 하지 못한 채 수술실을 나서야했고 이때부터는 심장 박동도
멈춰 기계에 의존해 목숨을 연명하는 신세가 됐고 신체 다른 조직의 기능도 서서히 정지돼갔다.

몸 곳곳에 연결된 무시무시한 의료장비와 복부에 꽂힌 호스에서 흘러나오는 붉고 푸른 액체를 걸러내기를 수 주간 계속하다가 다시 세 번째 수술을 했지만 이제는 갈라진 상태가 오래된 복부의 근육이 말라버려 재생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천신만고 끝에 의식이 돌아올 즈음 네 번째로 수술을 받고서야 2개월여에 걸친 기나긴 고통을 겨우 끝낼 수 있었단다. 이후로도 회복기와 재활치료 등으로 결국 9학년 2학기를 통째로 결석해야했지만 휴학대신 가을
학기에 10학년으로 그대로 진급을 감행키로 했고 이후부터는 수술대 위에서 생살을 가르는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더 힘든 정신적, 심리적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2세로 평소 누구와도 금세 친해질 만큼 사교성도 뛰어나고 활달한 성격이어서 친구도 많았건만 병원에 있는 동안 말로만 위로할 뿐 정작 바쁜 학업생활을 핑계로 병문안을 차일피일 미루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쓰라려온다. 장기 입원하는 동안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의 의미가 무엇인지 일찍 깨달음을 얻게 됐고,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작은 것에도 진정으로 깊이 감사할 줄 아는 삶에 임하는 겸손한 자세를 깨우칠 수 있었기에 오히려 지금은 당시의 아픈 고통의 시간에 감사한다고.

9학년의 절반을 병원에서 보낸 탓에 10학년이 된 뒤로는 신입생이란 각오로 특별활동에도 더욱 열심히 임해 학교 합창단 베이스로, 크리켓팀에서는 유일한 한인으로, 학교 레슬링 선수로, 미주한인청소년재단의 청소년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 와플 1기생으로, 불교신자로 있는 불광사에서는 고등부 부회장으로, 말 그대로 시간을 쪼개 바삐 움직이며 곳곳에서 활약했다. 또한 자신이 입원했던 병원을 다시 찾아 환자가 아닌 자원봉사자로 다른 환자를 돕는 일에도 참여해오고 있다.

함께 입학한 친구들과 나란히 졸업하고 말겠다는 욕심에 장기 입원치료로 뒤처진 학습 진도를 만회하는 데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덕분에 퇴원 후 곧바로 준비 없이 시작한 10학년 때 기록한 85점이던 평균 성적은 11학년 때에는 91.75점으로 뛰었고 이제 마지막 남은 12학년에는 물론 더 높아진 점수를 기대하고 있다. 지금도 복부의 일부는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신경조직이 손상된 상태임에도 나름의 노력과 긍정적인 사고 덕분에 이젠 팔굽혀펴기도 2분에 75개나 해낼 수 있는 튼튼한 몸이 됐다.

의료진조차 이렇게 살아난 것도 기적이지만 이처럼 건강해진 것은 더욱 믿기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으는데도 정작 자신은 수술 후 키가 자라지 않는 부작용이 조금 아쉬울 뿐이라며 웃는다. 이제는 건강도 되찾은 만큼 대학은 사관학교에 진학해 역사학과 법학과를 전공한 뒤 장차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해주고 보살펴주는 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고군은 고창래·고병희씨 부부의 1남3녀 중 첫째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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