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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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2010-09-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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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中)


북경 근교의 대학 타운 내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다. 비가 세차게 퍼붓는 한 밤중이었다. 중국어 단어 10개쯤 알까 말까한 우리 미국인 3명은 미국 중서부를 떠나 하루반 만에 도착한 호텔 프론트 데스크로 힘겹게 걸어갔다.

데스크의 젊은 여자 두명이 우리를 보더니 심각해졌다. ‘비즈니스 호텔’이라는데 그들은 영어를 거의 못했다. 우리의 방이 예약이 안 되어 있고 빈방도 없으니 바로 옆 호텔로 가 보라는 것만 간신히 알려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빌딩 간판이라며 한문 6자를 써주었다.


6개 한자 중 4개는 알아 볼 수 있었지만, 그 중에 ‘飯店’이 없는 게 이상했다. 한국에선 ‘반점’이 중국음식점의 의미로 쓰이지만 중국에선 ‘호텔’ 임을 알고 있는데. 도대체 우릴 어디로 보내는 거지? 혹 사기가 아닐까? 그래도 “셰셰” 라고 정중히 말한 후 빗 속 어둠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모퉁이를 도니 그 간판의 고층 빌딩이 나왔다. 호텔 같기는 했다. 큰 로비 옆 프론트 데스크에 두 여자가 있었다. 그들도 우리를 보자마자 비상 걸린 듯 표정이 차가워졌다. 우릴 보낸 호텔의 명함을 보이면서 중국어 단어 한두 개와 손짓, 발짓을 섞어 상황 설명을 했다.

귀찮아하는 그들이 영어 단어 한 마디 없이 말했어도, 예약이 가능한 걸 눈치로 알아냈다. 크레딧 카드를 주니 화난 듯 단호하게 말했다. “렌민비!” 그건 관광객의 기본 단어, 즉 중국화폐의 이름이었다. 그러면서 액수 칸은 비워 놓고 일단 사인을 하라 했다. 심상치 않았다. 당하는 건 아닐까? 소액의 현금만 지녔던 우린 주머니를 다 털고서야 예약을 마치고 지친 몸을 편안하게 누울 수 있었다.

이미 몇 개월 전에 호텔과 학술대회를 온라인 등록하면서 크레딧 카드 번호를 보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현금만 받는다며 당장 내라고 하다니. 시차와 피곤에 취해 반쯤 졸며 휘청거리던 우리의 입장에선 처음엔 꼭 사기 당하는 것만 같았다. 중국인이 미국인을 못 믿는 게 현실이건만.

중국 주최의 그 학술대회는 처음부터 그렇게 시행착오가 있었고 연속적으로 사무 처리가 불투명했다. 노년의 교수들에 의해 엉망진창이었던 학회는, 인내심 많고 친절한 중국 대학원생들에 의해 정리 되었고 참석자들도 의심을 풀었다. 마침내 우린 의심을 앞 세웠던 우리 자신을 의심케까지 되었다.

마지막 이틀, 관광을 했다. 중국 친구의 조언으로 진짜 중국음식도 먹었다. 하지만 그걸 먹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왜 중국인(가끔 한국인도)은 동물을 뼈채로 아무 데나 뚝뚝 토막 내서 요리를 하는 걸까? 어째서 날개, 다리, 가슴 등 이미 자연스럽게 골절이 있는 부분을 자르지 않는 걸까? 뼈라면 질색하는 우리 미국인들은 음식 속 뼈에 관해 끊임없이 농담했다. 머리 쪽은 어떤가? 머리채 생선을 요리하다니. 닭 머리는 상에 안 올려서 안 봐도 됐지만 오리 머리는 감당해야 했다.

마지막 날엔 지구 상 가장 드라마틱한 인간문명의 하나인 북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징샨 공원 언덕에 올랐다. 말 그대로 세상의 가장 중심부 같았다. 한국사에 보여 졌던 중국에의 사대주의도 필연적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곳이 바로 힘의 원산지였고 모든 것의 중심이었다. 남쪽을 내다보니 한문 중(中)의 모양이었다. 그 사각형은 자금성이었다. 수직의 획은 더 이상 황제의 길은 아니었지만, 전 세계에서 온 수 백만 관광객의 길이었다.

이제껏 거의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던 중국 왕조의 역사는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어떤 미국인들은 세계의 힘의 균형이 바뀌는 현실을 직시하며 자신 속에 이미 그 사대주의가 자라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되면 비극을 초래할 지도 모르는 민족주의가 그 전에 사라져야 할 텐데. 하지만 모르는 곳과 모르는 사람을 의심하고, 비가 퍼붓는 한 밤중에는 뭐든 의심하며, 한낮에 외교를 하면서도 의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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