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씨?”
주문을 받고 내 이름을 묻던 맥도널드 점원이 나를 흘끔 쳐다보고 싱긋 웃는다. 어쩌다 내 이름이 ‘씨’가 됐나 돌이켜보면 나도 웃음이 나온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말 한마디 잘못 내뱉어 30여년을 ‘씨’로 살았다. 오랜 세월 나와 동고동락한 ‘씨’인데 아직도 서먹서먹하다.
미국에 정착하며 이름 때문에 한번쯤 홍역을 치르지 않은 한인이 있을까? 천지개벽이 될지언정 한민족이 창씨개명의 설움을 또 당하랴 싶었는데 미국에 오자마자 미국식 창씨개명을 하고 말았다. 남자인 나는 다행히 창씨는 면하고 개명만 했지만 “성을 갈면 갈았지”하며 비장한 결의를 다지던 콧대 센 부인들도 끽소리 못하고 남편 성 따라 창씨(?) 하고 이름마저 갈아버렸다.
‘시엽’이란 멀쩡한 이름이 한 자씩 미국식으로 갈라서는 바람에 ‘퍼스트 네임’이 졸지에 ‘시’(Shi)가 되었다. 그러나 ‘Shi’를 제대로 발음하는 미국인은 드물다. ‘쉬이, 싸이, 솨이’ 등 제멋대로다. 나는 미국에서 ‘시’도 아닌 ‘씨’로 행세하며 살았다. ‘개명’하던 그 날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쉬이~”
인사과 여직원이 어린애 오줌 누이는 소리를 내며 입사 원서에 기록된 내 퍼스트 네임의 발음이 맞느냐고 물었다. 순간 ‘시엽’이 퍼스트 네임이라고 말할까 말까 고민했다. ‘시엽’이라 하면 없는 미들 네임을 또 대라고 추궁할 것 같아 나는 과감하게 내 이름을 포기했다. 나는 비타민 ‘씨’의 ‘씨’처럼 발음하라고 발성법까지 지도했다. 알파벳 ‘C’처럼 아주 발음하기 쉽다고 너스레마저 떨었다.
나는 ‘씨’로 개명했고 ‘씨’로 살기로 서약했다. 한 알의 겨자 ‘씨’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스페인어로 ‘씨’(si)는 ‘예스’라는 뜻이라는데, 하면 된다는 긍정적 사고를 갖고 살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씨’의 의미가 새삼스레 다가왔다.
사원들은 나를 ‘미스터 씨’라고 부른다. ‘미스터’가 우리말로 ‘씨’이므로 한인에게는 꽤나 웃기는 경칭이 된다. 사장에게도 안 붙이는 ‘미스터’를 왜 내 이름에 붙여 부르는지 궁금해 하는 직원들에게는 “미스터가 이름이고 씨는 성"이라고 웃어넘긴다. ‘미스터 씨’의 유래가 있다.
입사 이듬해 여름 내가 ‘씨’로만 통할 때였다. 여름방학 인턴 프로그램에 따라 모니카라는 귀여운 여고생이 실험실에 들어왔다. 그녀는 내 조수가 되어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미스터 씨’라고 불러댔다. ‘미스터 씨’는 전염성이 강한 독감처럼 입에서 입으로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개학을 맞아 모니카가 실험실을 떠날 즈음, 300여명의 직원 사이에 이미 ‘미스터 씨’가 만연한 뒤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사장과 중역들도 독감에 걸려 콜록대듯 나를 ‘미스터 씨’라고 불러댔다. 세월이 흐르며 고무업계에도 ‘미스터 씨’가 퍼져나갔다.
‘미스터’란 존칭이 주는 부담감으로부터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나는 코리안의 이미지를 멋지게 심기 위해 일터에서 열심히 ‘씨’를 뿌렸다고 자부하고 싶다. 후세들을 위한 최상의 유산은 이민 1세들이 미국 땅에 코리안의 이미지를 멋지게 심어놓는 것이다.
뿌림은 희생이다. 솔직히 말해 1세가 뿌린 대로 거두게 될 날을 상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악착같이 하나라도 더 움켜쥐기 위해 탈법을 마다않는 인종으로 코리안의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불안하다. 걸핏하면 싸우다 갈라서고 툭하면 법정에 가는 코리안의 부정적 이미지는 꽤 굳어져버렸다. 이제 재외국민 참정권 바람을 타고 한국의 정치판까지 미주 한인사회로 정식 이민을 왔으니 ‘어글리 코리안’들이 설치는 모습을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좋은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듯, 나쁜 이미지도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계라면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믿을 수 있는 민족으로 어딜 가나 환영 받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각자 맡은 일터에서 ‘씨’가 되어 미국 땅에 뿌려지고 썩어져 후손들이 백배, 천배의 열매를 거둘 때가 꼭 오기를 소망한다. 그 때를 위해 오늘도 ‘씨’ 노릇을 제대로 해야겠다.
황시엽 (W.A. 고무 실험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