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탐 존스의 추억

2010-08-0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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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중반 한국사람 가운데 ‘딜라일라’를 몰랐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구나 탐 존스의 노래를 조영남 가수가 우리말로 불러 더 알려졌다. 당시 군사 혁명과 함께 시작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혁과 함께 “잘 살아 보세” 하는 국민의 뜻이 팽배 할 때였다. 사회 전체가 월남 전쟁 붐으로 들떠 있을 때였고 한국 전쟁이후에 처음 보는 활발한 거리의 모습이었다.

그때 서울에서 느닷없이 탐 존스의 음악이 선을 보기 시작 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지 않아도 감미롭고 애수적인 팝송에 익숙하던 그때 그의 정열적인 가창법이 이제 막 자립 경제로 뻗어 나가려고 하는 우리에게 활력도 불어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하도 특이해서 얼굴을 보기 전에는 그를 흑인으로 착각했다. 그의 음악 장르는 퍽 다양했다. 때로는 당시에 유행하던 락 앤 롤도 있었지만 심금을 울려 주는 컨트리 웨스턴도 있었다.

지난 30여년동안 그의 특유한 노래는 이제 나이 70을 맞으며 새 모양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그는 지금이 있기까지 정열적인 열창으로 시나트라 등 여러 대가들한테 칭찬을 듣기도 했고 그의 음성은 영성이 깃들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마할리아 잭슨 등 흑인 가수들이 부른 ‘praise and blame’이라는 가스펠을 부르게 되었다고 최근 언론에 보도된다.


그의 음악은 가스펠과 락 앤 롤을 합친 음악이었다고 했는데 존스의 음성은 가스펠만 부르기에 적합치 않다는 평이 있어 더 관심을 끌고 있는가보다. 세월이 흐르며 그의 목소리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열적인 락 앤 롤을 부르는 목소리에서 구수한 바리톤(smoky baritone)으로 바뀌며 가스펠 부르기에는 적절한 목소리가 되었다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 생전에 라스베가스에서 같이 가스펠을 부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방향으로 나가라는 엘비스의 권유를 존스는 따르지 않은 적도 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으로 부터 2006년에 기사 작위를 받은 토마스 존 우다드경(탐 존스의 본명)은 영국 영토인 웨일스에서 자랄 때 흑인 영가를 접하며 그것이 흑인 노예들의 음악인지 모르고 즐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목소리는 가스펠 스타일이 아니라며 락 앤 롤과 부기우기가 곁들인 컨트리 웨스턴 류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리고 그의 음악에서 블루스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 등이 그의 전형적인 음악이었으며 가창법이었다고 한다. 이제 나이가 들며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을 하겠다고 한다. 인생에 큰 변혁을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결정한 것이다. 이제 생각을 하니 1960년 70년대에 그는 흑인 아프로 머리를 하고 배꼽까지 들어낸 셔츠와 다리에 꽉 끼는 바지를 입고 열창 하던 모습이었다. 그러던 그가 얼마 전 적은 밴드와 함께 바리톤으로 가스펠을 부를 때 관중들은 숨도 멈추듯이 그의 흑인 영가에 매료되었다.

그는 가스펠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영감만큼 관중도 느낀 것 같다고 공연이 끝나며 이야기 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의 인기는 대단하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나이가 비슷한 내 또래나 젊은이들을 위한 새 장르를 열고 있다. ‘딜라일라’가 좋아서 흥얼거리며 어려웠지만 우리 모두 희망을 갖고 살던 60년대가 생각난다.

그의 음악과 함께 우리의 장래를 꿈꾸며 국민에게 주어진 의무를 마치고 나는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강산이 여러 번 바뀌었다. 계속에서 새로 태어나는 그를 보며 나도 다시 태어나야겠다고 다짐한다.


이종혁 /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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