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이라는 것이
길고 지루하기만 한 것인지,
덧없이 짧기만 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는 고개까지 왔습니다.
그대를 지켜만 보며, 기다리며
나는 어느 변방에서 산 것입니까.
순박하고 트인 삶만이 시인의 길이고
마지막 유산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경건하고 싱싱한 날들은 멀리 가고
저녁이 색을 바꾸며 졸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의 황혼’ 일부>
지난 해 등단 50년을 맞은 마종기(71·사진)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 ‘하늘의 맨살’(문학과지성사)과 함께 시작 에세이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비채)를 냈다.
새 같고, 별 같고, 이슬 같은 두권의 책을 앞에 놓고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니 어줍잖은 책 소개나 평을 하기가 도무지 부끄럽다. 이렇게 투명하고 아름답고 반짝이는 글에 대해 감히 뭐라 할 수 있을까. 시인의 글만 모아 적는 편이 훨씬 훌륭한 소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늘의 맨살’ 맨 앞장에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몇해전에 출간한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이후 여러 잡지에 발표한 시들을 여기에 모았다. 생각해보면 이런 몰골로나마 계속 시를 써올 수 있었던 것도 복이 아닐까 싶다”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에 관해서는 “내 문단 등단 50년을 기려주겠다고 해서 졸시 50편을 골라 그 시에 관련된 이야기나 분위기에 대한 글을 보태어 한권의 책으로 엮게 되었다”고 썼다. 그리고는 “아무리 볼품없는 시일지라도 외국에서 평생의 대부분을 살고, 외국어를 일상어로 쓰면서 모국어로 수백 편의 시를 써왔다면, 그 인간의 가슴 어느 곳에 몇 개의 상처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로 이민자들의 생채기 난 정서를 함께 보듬고 있다. 이 에세이집은 마 시인이 50년 동안 쓴 보석같은 시들과 그 저릿저릿한 사연들을 곱게 풀어쓴, 그리고 아련한 일러스트(클로이)가 보기 좋은 책으로 미주 문인들은 꼭 일독하기를 권한다. 마 시인은 또 “시는 내게 사랑이었고 희망이었고 하느님이었고 무조건적인 이해심이자 베풂이었다”고 했고, “세상의 모든 비바람을 피해 늘 의지해온 내 조국에게 오래 다져온 사랑과 그리움으로 이 책을 바친다”고도 적었다.
책 뒤에는 후배들이 마종기 시인을 생각하며 쓴 글도 실렸는데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간절하고 겸손하고 다정하고 순결한’(권혁웅 시인)
‘따뜻하면서도 맑고 쓸쓸하면서도 담백한 삶이 살아있는 시, 쉬우면서도 단단하고 단순하면서도 순한 희망을 놓지 않는 시’(정끝별 시인)
‘그의 시는 수식과 분식의 흔적이 거의 없어서 읽을 때 화장 안 한 맨 얼굴을 만나고 있는 느낌을 준다. 말과 삶과 진정성이 어울린 어느 평화롭고 따뜻한 지점에 마종기의 시는 있다’(이희중 시인)
마종기 시인은 “나는 내 시가 한국문학사에 남기보다는 내 시를 읽어준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속에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시인은 그 바램을 이루었다.
▲마종기 시인은
아버지는 아동문학가 마해송이며, 어머니는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서양무용가 박외선이다.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 중이던 1966년 미국으로 와 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다. 오하이오 의대 소아과와 방사선과의 임상 정교수로 가르쳤고,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과 부원장을 역임했다. 2002년 은퇴 후 연세대 의대 초빙교수로 ‘문학과 의학’ 과목을 신설, 5년 동안 강의했다.
1959년 현대문학에 ‘해부학교실’ 등을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의과대학 1학년 때에 첫 시집 ‘조용한 개선’을 출간하여 제1회 연세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도미해서도 모국어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으로 4~6년마다 시집을 내면서 투명한 서정의 언어를 선보였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