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들의 초라한 자화상

2010-07-26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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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TV 사극 드라마에서 권력을 놓고 서로 죽고 죽이는 옛 선조들의 치열한 암투광경을 신물이 나도록 보아왔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시는 그러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기보다 오히려 흥미 있어 하면서 즐기는 분위기다.

왜 그럴까? 남이 안 되는 걸 좋아하고 뭐든지 내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그르다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편집적인 사고방식이 정말 우리 안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요즈음 한국사회에서 정치인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권력다툼은 정말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이다. 한나라당 주류의 파워게임이 비주류까지 맞물리면서 그 양상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소위 권력조직을 둘러싸고 빚어진 영포회 파문 등을 보면 이게 우리들의 자화상인가 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오욕으로 점철된 우리의 역사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권력다툼은 이미 조선시대 때 어느 정도로 치열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론, 소론, 남인, 북인으로 나뉘어져 서로 물고 뜯고 하면서 다투던 당파싸움은 피비린내 나는 사대사화를 유발시켰으며 숱한 정변과 반정, 참화 등을 야기했다. 종국에는 국론분열로 인해 나라가 일본에 넘어가는 비극까지 초래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의 압제 속에 36년간이나 설움을 당하고도 그 폐습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미주 한인사회는 특별히 정치라고 할 게 없기 때문에 한국만큼 역겨운 상황은 없지만 이곳도 때때로 추하고 지저분한 생각이 드는 일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일부 한인단체들이 내부에서 갈등을 겪고 있고 적지 않은 교회들이 장로와 목사, 혹은 교인들과 목사 간에 분쟁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고 나의 의견이 수용되고 싶으면 상대방의 것부터 우선 존중해야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말과 행동은 원천적으로 소통과 화합을 저해하는 요소다. 소통과 화합이 안 되는 가정이나 집단, 사회나 국가는 분열되고 시끄럽게 마련이다.

한국도 한동안 갈등관계에 있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년 만에 회동할 것이라고 한다. 소통과 화합이라는 취지가 깔려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반드시 원만한 협조관계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 날 세 한인이 모여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사람들로 한국 정치에 대해 꽤 관심이 많아 보였다. 한국 정치인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둘씩 나오자 금방 장내가 시끄러워졌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 하면서 내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서로가 목청을 돋우며 자기 의견들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왜 그렇게 한국 민족은 모이기만 하면 다투고 갈라지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우리 사이도 아마 이권이 개입되면 어김없이 다툴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은 할 수 없어, 남이 잘되는 꼴을 절대 못 보잖아” 자조 섞인 말이 나오고 나머지 두 사람도 모두 “맞아” “맞아” 하는 것이었다.

우리 민족은 정말 그런 속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가. 우리 스스로가 그렇다고 자인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민족의 숭고한 정신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는 오로지 분열과 혼란, 파멸뿐이다. 오늘의 우리를 거듭나게 해서 영광의 미래를 이끌 그런 위인이 없을까?


여주영 /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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