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안전거리

2010-07-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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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는 순식간이다. 로스앤젤레스에 볼일이 있어 길을 나섰다. 차를 타고 갈 때면 정신을 반짝 차린다. 아무리 조심해서 운전을 해도 언제 어디서 다른 차가 굴러와 내 차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젠가 딸이 좌회전을 하다 멀리서 달려오던 트럭을 보지 못해 옆구리를 받힌 후, 앞차를 들이받은 적이 있었다. 자동차의 앞 엔진 뚜껑이 종잇장처럼 찌그러졌지만 사람들은 무사했다. 딸이 다치지 않았던 것은 기적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전날 밤 나는 집 뜰에서 죽은 어미 새의 새끼들을 살리려고 샌디에고 동물원까지 가져다준 일이 있었다. 한 생명을 살려보려던 내 작은 정성 덕분이었을까. 두 자동차가 피해를 보았지만 딸을 비롯하여 탑승자들은 무사했다.


오늘도 405번과 110번을 지나 10번 고속도로의 연결다리를 막 올라탔는데 차들이 밀리면서 경찰차가 사이렌을 불며 왔다. 곧이어 구급차도 왔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커다란 짐 트럭이 고속도로 난간에 걸치어 벌렁 옆으로 드러누워 있었다. 근처를 둘러보니 바로 다리 난간 밑에 사람이 사는 건물이 있고 넓은 주차장에 차들이 있었다. 튼튼한 난간이 여러 사람을 구했다.

얼마 전 한국 방문 중 인천 공항을 향해 가던 길에도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인천대교의 난간을 박차고 버스가 오른편 언덕에 굴러 떨어졌고, 왼쪽엔 조그만 흰 자동차가 쭈그러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구조대는 다리 밑으로 떨어진 버스로만 몰려 가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한국의 뉴스에는 인천대교의 교통사고가 방영되었다. 고속도로에 정차한 차를 피하려다 12명이 죽고 부상자를 내었다. 사고의 원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무엇보다도 자동차끼리 무시한 안전거리였다.

오늘 로스앤젤레스의 교통사고에서는 여러 대의 뒤차들이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달렸기에 피해가 없었다. 급히 난간을 돌아가던 트럭 운전사만 희생자였다. 또한 커다란 트럭이 들이쳐도 끄덕하지 않도록 만들어 놓은 튼튼한 난간의 건축공법도 훌륭했다.

미국의 위용이다. 자랑했던 인천대교의 건축은 허점이 들어났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었다.

자동차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안전거리는 필요한 것 같다. 절친한 친구를 믿고 보증을 서주었다가 가족이 몽땅 길바닥에 쫓겨나는 경우를 보았다.

아무리 핏줄이라도 때에 따라서는 냉정할 만큼 사람사이에도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지난날 친구에게 가슴을 털어 놓고 충고하다 오히려 화를 뒤집어쓰는 억울함을 나도 당한 적이 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의 쓴 맛. 자동차는 물론 사람끼리도 어느 정도의 안전거리는 지켜야겠다.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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