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젊은 날 추억 떠올라
가족여행은 에너지 충전 기회
지난 오월에는 영문학도 시절(학사. 석사) 때부터 계획했던 영국일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인생이 온통 아름답게만 여겨졌던 젊은 시절의 감정이 사라진지는 오래지만, 감미롭고 푸른 봄철의 영국 여행은 젊음이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 들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녹색의 대장원과, 그곳에서 풀을 뜯는 까만 머리의 양떼들과 젖소들, 노란 카놀라 꽃 벌판과, 길 양쪽에 즐비한 노란 가시 금작화 등 일상을 떠나 삶을 관조할 수 있었다.
먼저 우리 일행은 런던의 남쪽에 있는 Plymouth를 거쳐(이 곳은 1620년 Mayflower호로 미국으로 와서 매사추세츠 주의 Plymouth에 정착한 영국의 청교도단 (Pilgrim Fathers)이 떠난 항구), 영국의 전설적인 인물인 Arthur왕의 묘가 있는 Glastonbury 사원도 가 보았다. 그리고 Thomas Hardy (1840-1928)의 고향인 Dorset카운티의 Dorchester를 방문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하지만, 특히 토마스 하디는 자신의 고향인 Dorchester를 Wessex라 가칭하여 푸른 초원과 양떼들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광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전형적인 영국 시골의 농부들의 생활을 아주 상세하고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까닭으로, 그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작품 속에 나오는 지역을 실제 지명과 비교하여 지도를 만들 정도였기 때문에 꼭 가보고 싶었었다.
2006년에 다시 영화와 됐던 그의 첫 번째 소설 ‘상나무 아래서’(Under the Greenwood Tree, 1872년간), 첫 부인 Emma와의 열애시절을 기록한 ‘한 쌍의 파란 눈동자’(A Pair of Blue Eyes, 1873년간), ‘성난 군중을 떠나서’(Far from the Madding Crowd, 1874년간), ‘캐스터브리지의 시장’(The Mayor of Casterbridge, 1886년간), 또한 대부분의 이민 1세들이 익히 알고 있으며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 1891년간,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수작인 ‘귀향’(The Return of the Native, 1878년간), 소설로서는 마지막 작품이었던 ‘불투명한 쥬드’(Jude the Obscure, 1895년간) 등이 모두 그의 고향 Dorchester와 그 주변 지역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Salisbury의 Wiltshire에 있는 고인돌 공원에도 가 보았다.
선사시대인 약 기원 전 3000년에 그 곳으로 옮겨 놓았다는 커다란 고인돌들은 하디의 소설 ‘테스’의 마지막 장에서 테스가 자신을 욕보여 결국은 불행하게 만든 Alec Durbeyfield를 살해한 후, 아침 햇살 속에서 경찰에 잡히는 곳이었다.
또한 이번 여행으로 ‘귀향’에 나오는 gorse(furze, 노란 꽃을 피우는 사시 금작나무)나 heath가 어떠한 관목인지, 귀향의 ‘Egdon Heath’라는 지역은 어떠한 곳을 배경으로 한 곳이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가 죽은 후, 토마스 하디의 심장은 Stinsford의 첫 부인 Emma의 무덤 속에, 그의 나머지 시신은 런던에 있는 Westminster 대사원에 안치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19세기 영국 낭만파 시인의 거두이며 계관 시인이었던 William Wordsworth(1770-1850)의 고향이었던 Lake District의 Cumberland에 있는 Cockermouth와 그의 가족묘가 있는 Grasmere의 St. Oswald 교회도 방문했다.
영국 내에서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이지역의 호수, 그 위에 한가롭게 떠있는 배, 산의 그림자가 호수 위에 빗겨져 드리워진 정경은 자연의 경건함을 느낄줄 아는 사람이라면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베기기에 충분하였다. 그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대부분의 작품을 썼던 Dove Cottage라고 불리는 그의 생가도 방문했다.
우리에게 “나는 구름처럼 외롭게 거닐었네”(I wandered lonely as a cloud) 라고 익히 알려진 ‘수선화’란 시도 이곳에서 썼으며, Samuel Taylor Coleridge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 시의 형식을 정의했던 ‘서정적인 민요집’(Lyrical Ballads, 1798년)이란 시집도 이곳에서 집필했었단다. (이 시집에는 워즈워스의 시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중의 하나인 ‘틴턴 사원’(Tintern Abbey)과 콜러리지의 ‘옛 수부의 시가’(The Rime of Ancient Mariner)가 수록 되어 있음)
필자가 대학 시절에 좋아했던 그의 서정시 “유년 시절의 추억으로부터의 불멸의 고시” (Intimation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라는 송시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한다.
“목장과 작은 숲과 개울과 대지, 그밖의 모든 평범한 정경들이 천상의 빛, 꿈의 영광과 신선함으로 보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일. …중략… 한때는 그렇게도 발했던 영롱한 빛이 내 앞에서 영영 사라졌나니, 초원의 빛과 꽃의 영광을 다시는 되돌리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슬퍼하지 말고,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찾을지어다.”
이 시의 구절은 세월의 무게를 반추하는 필자의 마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 “세상살이가 우리를 너무 짓누른다”는 우리 것인 자연( 바다와 바람과, 푸른 목장)을 누릴줄 모르는 우리들의 찌든 마음을 질책한다.
모두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자녀들과 함께 산으로 들로 자연을 만끽하러 나갈 것을 권한다.
클라라 박 / CSUN 교수·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