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한 마디 자녀에 큰 영향
격려와 사랑의 메시지 담아야
학교 다니면서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이었든, 소홀히 한 학생이었든, 누구나 선생님들이 해주신 얘기 중에서 인상 깊게 들었던 얘기를 한두 개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말씀이 대부분의 경우 수업내용과 별로 관계가 없는 얘기라는 점이다.
나 역시 미국에 와서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 첫 시간에 한 여교수가 학생들에게 해준 권고를 인상 깊게 들었던 생각이 났다.
교육통계학을 가르쳤던 교수는 나처럼 비영어권 학생들이 잔뜩 긴장해서 본토박이 학생들과 섞여 앉아 있는 교실을 향해서 “여러분,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고 있는 감정입니다. (We all have butterflies in the stomach.)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명성과, 지위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지요. 여러분, 장래에 대해서 너무 불안해 하시고, 걱정하지 마세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자신감이 조금씩 쌓이고, 계획한 일도 잘 풀릴 것입니다.”
진짜 수업내용인 교육 통계학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평범하다면 평범한 이 충고를 나는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 충고와 곁들여 얘기해준 에피소드가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생 시절 이 교수는 어머니와 함께, 뉴욕시에서 공연 중인 오페라를 관람하러 갔었다.
여주인공 역을 맡았던 가수는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소프라노였는데, 그 날 공연에서는 특히 열정적이고 감동적인 공연을 해서, 기록적으로 오랜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했다. 끝나자마자 이 모녀는 무대 뒤로 달려가서 이 소프라노와 직접 대면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당신의 열연과 열창에 너무너무 감격했다”고 흥분해 있는 두 사람에게 웃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던 이 디바는 잠시 웃음을 거두고, 낮은 소리로, “정말로 내가 잘했어요?”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디바도 두 명의 무명 관객으로부터 다시 한 번 자신의 성공을 확인 받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누구나 ‘뱃속의 나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좋은 실례였다고 학생들에게 말해 준 것이다.
서론이 좀 길어졌지만, 이 ‘뱃속의 나비’ 문제는 우리들의 자녀교육 문제에서 볼 때 가볍게 지나칠 문제는 아니다. 비록 숨은 능력이 대단한 인재이지만, 이 ‘뱃속의 나비’문제가 심각한 정도라면, 자기 선전이 필수적이 되다 시피 한 미국 사회에서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명문대학에서 빠지지 않고 요구하고 있는 리더십의 요소가 자기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 동료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하고 의견 교환을 할 수 있는 능력, 정리된 이론으로 타인을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겸양의 미덕을 강조했던 한국문화의 유전인자가 깊이 새겨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한인 학생들 중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자신감 있게 이 능력을 밖으로 표현해서, 자기 PR을 하는 데는 서투른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하면 중요한 계기마다 훼방을 놓는 불청객 ‘뱃속의 나비’를 제거해 버릴 수 있을까?
타고난 성격을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 조심스럽게 내려본 나의 의견이다. 그러나 뒤미처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줍음, 불안감, 자신감 결여를 어느 정도라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자기교육’과 ‘연습’ 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자기교육 방법의 순서를 보면, 우선 “나는 자신감이 없고, 특히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는 불안감이 심해서 제대로 능력 발휘를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첫 단계이다. 다음에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런 문제를 가진 것이 나뿐이 아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들 겪고 있는 문제이구나” 또 “조금 실수를 한다 해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야”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자기능력에 대한 확신을 강조한다. “나는 남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사람이 아니야. 머리도 좋고 지식도 상당한 수준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지. 용기를 갖고 도전에 응 해보자” 이런 식의 자기교육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자신감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두 번째로 추천하는 방법은 연습이다.
잘 알려진 사실대로, 많은 사람들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스피치 하는 것을 제일 두려운 일이라고 꼽고 있다. 교실 안에 있는 30명 내지 40명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일찍부터 3명 내지 4명 앞에서 발표하는 연습을 하고, 차츰 숫자를 늘려가면서 연습을 계속하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무심코 들려준 얘기가 오랫동안 학생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집안에서 부모가 무심코 하는 말이 자녀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다.
A집안에서는 걱정과 불안에 차
있는 말을 자주하고, B집안에서는 용기와 희망에 찬 말을 자주 한다면, 각각 이런 말을 듣고 자란 자녀들이 장차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갖고 세상을 살아나갈 것인가를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노교수의 격려하는 말씀 덕택으로, ‘뱃속의 나비’를 약간이나마 잠재우고 그 코스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김순진<교육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