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2010-07-01 (목) 12:00:00
나의 소년시절은 銀(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江(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 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김기림 (1908 - ? )
한 사람의 일생이 길을 따라 잘 형상화돼 있다. 누군들 길을 따라 걷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랴. 우리가 떠나왔으며 누군가가 떠나간, 그 길을 돌아보면 늘 가슴이 아리다. 김기림 시인의 대표 시 중 하나로 애송되고 있는 이 작품은 1936년에 ‘조광’지에 발표됐으며 그의 시집들에는 실려 있지 않다. 1988년 월북 작가들 해금될 때 출판된 그의 전집에도 수필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수필이면 어떻고, 시면 어떠랴. 그런 건 경계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상관할 일이다.
김동찬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