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파르트헤이트와 자블라니

2010-06-18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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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제결혼 비율이 전체의 11%를 넘어섰다고 한다. 한국도 이젠 혈통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세계의 흐름이며, 어떻게 해야 함께 발전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같은 현대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악법을 오랫동안 고집했던 국가도 있었다.

백인들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다른 인종간의 혼인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16세가 넘으면 만드는 신분증에 백인, 유색인, 흑인, 인도인 중 하나를 반드시 표기하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이것도 부족했는지 인종에 따라 거주지를 분리하고, 특히 흑인들만의 자치정부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그들을 오지로 내몰았다. 사회복지, 교육, 문화, 의료 등 모든 부문이 인종에 따라 별개로 움직였고, 심지어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고 싶어도 백인전용 비치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 2010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저질렀던 인종 분리정책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관한 일부 내용들이다.

1948년부터 노골적으로 자행된 이 정책은 넬슨 만델라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1994년 완전히 폐기됐지만,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월수입 502랜드(미화 63달러)를 남아공의 빈곤 기준으로 삼을 때, 전체 인구의 47%가 빈곤층에 해당되며 대부분이 흑인이다. 또 실업률 역시 2009년 기준으로 백인이 5%인 반면, 흑인은 30%에 육박했다.

이 같은 사회적 불균형은 사회불안 요소로 이어져 살인사건은 미국의 8배, 강간사건은 두 배가 넘는다.

월드컵 취재진 또는 관광객들이 시도 때도 없이 강도를 당하고, 물건을 도난당하는 일이 전혀 새로운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남긴 ‘업보’인 셈이다.

이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니 한 가지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중국계 이민자들의 분류이다. 금광 노동자로 19세기 말부터 남아공에 진출했던 중국 본토인들에 대해 고민하던 남아공 백인정부는 결국 이들을 유색인종이 아닌 ‘다른 아시안’(other asian)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들과 국교를 맺고 있거나 교역을 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에 대해서는 ‘명예 백인’으로 분류해 백인들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했다니 실소가 절로 나온다.


얼마 전까지 극장에서 상영됐던 ‘인빅터스’(Invictus: 정복되지 않는 자들이란 의미의 라틴어)란 영화가 있었다.

남아공 흑인 민권운동의 리더로, 또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잘 알려진 넬슨 만델라가 럭비 국가대표팀을 통해 반목과 갈등을 겪어 온 흑백간 인종화합을 이룬다는 내용으로 차분하면서도 담백한 진행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특히 영국 시인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1849-1902)의 시 ‘인빅터스’ 말미에 나오는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구절을 읊조리는 주인공의 대사가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제전이 아니다.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다.

원둘레 약 69센티미터, 무게 약 440그램에 불과한 이 대회의 공인구 ‘자블라니’의 움직임에 승부가 결정 나고, 탄식과 환호가 엇갈지만, 그 작은 공의 의미를 경기 결과로만 끝낸다면 너무 아까운 것들이 많다.

자녀들과 한국 팀을 응원하면서 정체성을 일깨워 줄 수 있고, 주최국인 남아공의 어두웠던 과거사와 현재를 통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멜팅 팟’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해줄 수도 있다. 또 출전국 32개국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볼 수 있다.

자블라니가 아파르트헤이트를 뛰어 넘어 남아공에 새로운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을 기원하는 것처럼, 내 자녀가 우리 미래의 주인이자, 선장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황성락 / 특집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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