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맹모삼천

2010-06-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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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가주 주립대학에서 힘들기로 이름난 회계학 중급반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초급반 회계학은 숫자에 웬만큼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리 힘들지 않지만 이론을 위주로 하는 중급반은 그렇지 않다. 한 나이든 중국인 학생은 숙제도 밀리고 고전을 하고 있었다. 중간시험도 하위권을 밑도는 등 여간 어려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수업 전후에 교수실로 나를 찾아와서 도움을 받았는데도 퍽 힘들어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유럽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옷차림도 좋고 하여 단순히 공부가 늦어진 학생 같지는 않았다. 공부를 왜 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는 공장을 10년 넘게 운영하면서 돈도 꽤 벌며 잘 나갔다고 한다. 중국 태생 1.5세인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고 사업 초기에는 거의 잠도 자지 않으며 일에 열중했다고 한다.


영어를 못하는 이민 1세 부모에게서 어렵게 자란 그는 자식은 자기처럼 키우지 말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부인은 일만 하는 남편이 싫어서 아들이 10세 때 이혼을 하고 떠나 버렸다. 아이를 차이나타운에 사는 어머니에게 맡겨 놓았다가 주말에 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낙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이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어린 아들이 담배를 피우더니 급기야는 마리화나 등 마약을 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자기의 목표가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들을 위하여 비즈니스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여름에는 야구경기장에, 가을이면 농구와 미식축구장 등 지금까지 못했던 아버지 노릇을 하며 부자간의 관계가 원만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정상으로 돌아와 학업에 열중하려고 하는데 주위 아이들과의 관계를 끊지 못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하며 학교를 옮겼다. 내가 맹모삼천 이야기를 해주니 참 이해가 간다고 한다.

자기를 위하여 희생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던 아들은 아버지에게 제안을 했다고 한다. 40대 중반의 아버지가 학교를 다니면 자기도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하다가 자기도 중도에 그만둔 대학에 미련도 있고 하여 아들과 ‘딜’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먼저 입학하고 다음 학기에 아들도 같은 학교에 입학을 했다.

옆길로 나가던 아들이 아버지의 정성에 감명을 받고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들한테 큰소리치고 등록을 했는데 성적이 좋지 못해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한다. 사업을 할 때 회계와 부기를 잘 몰라 애를 먹어 택한 과목인데 자기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호소를 한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여야 보람이 있다는 말을 하니 그는 전과를 하기로 했다. 반면 아들은 전산과에 입학하여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며 여간 대견해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그 부자에 대한 이야기는 다 잊었는데 얼마 전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학교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는다며 작가가 되겠다고 한다.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었다.

맹모삼천 이야기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고 그들의 인생을 바꾸게 했다고 한다. 그의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며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종혁 /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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