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발
2010-06-03 (목) 12:00:00
누나가 국사발을 떨어뜨려 쨍그랑 박살이 났습니다. 엄마가 쪼프르 달려가서 어디다 눈을 팔고 이러냐고 한바탕 시끌벅적 울고불고했습니다 우리 누나는 학교 다니다 말고 집안 살림 맡아 밥 짓고 빨래하며 남새밭 가꿉니다. 그러나 누나가 한눈 파는 걸 못 보았습니다 엄마는 텃밭에서 마늘을 쑥쑥 뽑아 내다 팔고 담배 한 갑 갈치 두 마리 사들고 와서 감자와 쪽파를 쫑쫑 썰어 넣고 아빠는 새마을 일판 품삯 챙겨 막걸리 한 주전자와 콜록콜록 들어옵니다 누나는 한 번도 딴 데 눈을 판 적이 없습니다
김형오(1943 - )
누나는 학교도 못 가고 집안 살림을 돕다가 국사발을 깨뜨려 먹었습니다. 동생인 화자는 누나가 한눈팔지 않았다고 대신 변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누나 대신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어린 나이에도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동생이 누나의 결백을 거듭 강조하는 것을 보니 조금 수상하기도 합니다. 누나가 옆집 총각에게 한눈을 팔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날의 동화 한 편을 읽은 것 같습니다. 오누이의 정겨운 모습이 눈물겹습니다.
김동찬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