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따라 구르다가 멈추는 가랑잎아
무엇이 아쉬워서 구르다가 멈추느냐
뒤돌아보아야 빈 가지에 마른 바람만 머물고
이젠 새 세월이 움트는 것을
그래도 네가 남긴 푸른 강물이
저 세월 속에 흐르고
너는 이제 귀향의 병정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안식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다
언젠가는 모두가 돌아가야 하는 길
나도 너처럼 어느 날 저 바람 따라서
대지 속으로 사라져 가겠지만
그래도 너처럼 뒤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빈 가슴으로만 갈 것이다
<‘귀향의 길’ 전문>
27일 로텍스 호텔서 ‘추모의 밤’ 행사
지난 2월 타계한 시인 겸 평론가 고 박영호씨의 유고시집 ‘서쪽으로 날아가는 새’와 평론집 ‘미주한인 소설연구’가 출간됐다. 이 책들은 고인이 타계하기 전 완성했으나 사후에 출판된 것으로, 지인들은 그가 와병 중에 이룬 결실이 책으로 나온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시집 ‘서쪽으로 날아가는 새’는 고인이 생전에 쓴 50편의 시와 이를 영역한 16편의 시를 수록했는데, 그 내용들이 대부분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그가 떠나갈 저 너머의 세상을 그린 작품들이다.
시집의 머리말에서 그는 “남들처럼 꿈도 꾸고 사랑도 하고 시도 쓰면서 살았다. 그러나 스스로는 한 번도 시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하고 “이제 내게 한 같은 것은 없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은혜로 이미 이 세상의 내 모든 한을 풀었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고인과 함께 ‘미주시인’을 발행해 온 배정웅 시인은 “박영호 시인은 온 열정을 다해서 미주한인 소설연구 등으로 미주평단의 정점에 선 평론가이다. 그러나 그는 평론가 이전에도 한 사람의 시인이었고 평론가 이후에도 한 사람의 시인이다”라고 회상했다.
평론집 ‘미주한인 소설연구’는 한인이민사를 초기부터 거슬러 올라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까지 찾아내 기록하는 등 광범위하게 100년 동포문학을 조명하고 있다.
박영호씨는 목포사범, 서라벌예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자유문학’을 통해 시 등단, ‘해외문학’ 수필 등단, ‘문예사조’ 문학평론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와 시론 전문지 ‘미주시인’ 편집주간으로 활약했다. 제12회 가산문학상과 해외문학상 평론 부문상을 수상했다.
한편 박영호 추모의 밤이 27일 오후 6시30분 로텍스 호텔에서 열린다. 미주시학(발행인 배정웅)이 주최하는 이날 행사는 제16회 가산문학상(전 안데스 문학상) 시상식을 겸한 모임으로 1부에서 간단한 시상식을 가진 후 2부에서 박영호의 문학세계, 작품낭독, 회상 등의 순서로 추모의 밤을 갖는다. 이날 참석자들에게 미주시인과 2권의 유고집을 증정한다.
회비 20달러. (213)327-9675
<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