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2010-05-14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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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A를 졸업한 홍성호 선교사가 연봉 빵빵한 휴즈항공사의 컴퓨터 엔지니어직을 그만두고 홀연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의 평신도 선교사가 된 것 은 24년 전인 1986년의 일이다.

플로리다 본부에서 훈련을 마친 그는 곧 호주 북쪽에 있는 파푸아뉴기니의 우까룸파로 훌쩍 날아갔다. 선교센터에서 전공인 컴퓨터를 활용, 성경번역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것이 임무였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하던 그가 성경을 다른 나라 말로 옮기는 사역에 직접 나서게 된 것은 언뜻 우연처럼 보이는 일이 계기였다. 풍토병을 얻어 귀임하게 된 미국인 선교사를 차로 공항에 데려다 주다 ‘거룩한 부담’을 느낀 것이다.


홍 선교사는 1991년 파푸아뉴기니 동단에 자리잡은 외딴 섬 ‘심베리’(Simberi)로 가서 지금까지 살면서 성경번역의 외길을 걸었다. 심베리는 오지 중의 오지다. 남가주에서 가려면 비행기를 3차례 환승한 다음 트럭으로 3시간 이동해 7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작은 보트에 다시 몸을 실어야 한다. 그 후로도 때론 태풍이 부는 태평양을 4시간이나 건너가야 도착할 수 있다. 대기시간까지 합해 꼬박 48시간이 걸린다. 전기는 당연히 없고 하나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긷는 데도 30분의 노동이 필요할 정도로 문명의 혜택과 담을 쌓은 곳이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성경구절을 연상시키는 땅끝 같은 섬에서 난생 처음 듣는 ‘만다라어’를 배우는 일이 그의 사역의 출발점이었다. 만다라는 심베리 등 4개 섬으로 구성된 ‘따바 군도’에서 고작 5,000여명이 사용하는 언어다.

초기에는 각 섬에 산재한 여러 마을들을 방문해 3~4개월씩 거주하면서 만다라어 사투리를 연구했다.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폐가를 거처로 삼는 등 형언할 수 없는 고생을 해야 했다.

말도 안 통하는 것은 물론 피부색과 생김새조차 딴판인 그의 가족을 경계하는 원주민들을 사귀는 일은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들은 더욱이 70년 전까지만 해도 식인종이었던 사람들이다.

그는 부인과 함께 어린 자녀 넷을 데리고 다니며 주민들의 언어를 배웠다. 그의 자녀들이 말라리아 등에 걸리고 자신들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섬사람들은 미국에서 온 이 동양계 이방인들을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홍 선교사는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그들의 말을 기록할 수 있는 문자를 마침내 완성했다. 역사적인, 문맹 퇴치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전도한 원주민 동역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음은 물론이다. 동시에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진력해 술과 싸움에 빠져 있던 주민들을 새 삶으로 이끌었다.

절해고도에 묻혀 성경 번역에 청춘을 고스란히 바친 그가 50대 중반이 된 지난해 신약을 완성했다. 말 그대로 ‘피와 땀과 눈물과 기도의 결정체’다. 그는 오는 20일 남가주 등에서 방문하는 외부 손님 약 40명과 원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에서 인쇄해 온 2,000권의 만다라어 신약성경을 놓고 ‘감격적인’ 봉헌식을 갖는다.


교회의 분열과 헤게모니 다툼이라는 슬픈 소식이 너무 자주 들리는 시대, 홍 선교사 같이 안 보이는 곳에서 숨은 진정한 섬김과 사랑을 실천하는 한 사람이 사무치게 그립다.

크리스천들이 그의 말없는 희생을 본받는다면, 팍팍한 이민의 길을 걸어가는 일반 한인들이 교회와 목회자, 교인들로 인해 근심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때로 세속보다 더 세속적인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사람들이 예수에게로 가는 길을 막는 교회들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는 그저 찬송가 구절이 아니라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크리스천의 생활원리임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 타성에 젖은 종교생활을 벗어던지고 이 땅의 진정한 ‘빛과 소금’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장섭 / 종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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