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손 칼럼 / 진짜 사나이
2010-04-28 (수) 12:00:00
지난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해 46명의 해군과 그들을 구하려던 한 주호 준위 등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모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겐 깊은 조의를 표한다.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안보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의식 확립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남쪽에서 밀리면 발딛고 설 땅도 없다. 모두 바다에 빠지게된다. 그 때엔 건져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 영토는 사수되어야한다.
국토 방위의 신성한 병역 의무를 피하려는 일은, 국가로부터 혜택은 다 받아도 의무는 필하지 않겠다는 사나이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자유는 희생이 없이 결코 오지않는다. 그만큼 자유는 소중하다.
지금 되돌아보면, 한국 군 복무를 통해 미국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을 얻었다. 미국 군사 고문단 앞에서 소위 계급장을 달고 영어로 브리핑을 한다든지, 통역 등 많은 경험을 쌓았다. 통역 중엔 그저 뮈라도 한가지 더 얻으려던 상관의 지시를 영어로 말하기가 참으로 쑥스러웠다. 우리는 그만큼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었다. 나중엔 미국에서 처음 들여오는 대공포인 발칸포 (Vulcan) 교육을 위해 사병 400명을 인솔하고 미국 텍사스로 가서, 낮에는 사병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 밤에는 다시 사병들에게 한국어로 강의하는 차출도 받았으나 제대가 가까와 기회가 없었다.
최근 야생화 사진을 찍으러 피나클 준 국립 공원에 (Pinnacles National Monument)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절벽을 타는 많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 옛날 유격 훈련을 받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장비가 아니라, 밧줄로 몸을 동여메고 내려오던 열악한 환경의 훈련이었다. 공수 훈련하며, 침투 훈련 등등… 군 복무가 아니면 도무지 경험할 수 없던 일들이었다. 이 일들이 훗날, 위기 대처에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병역 의무를 피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기회주의적으로 살려는 사람들을 보며, 마치 박쥐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새들에게는 새처럼 행동하고, 땅짐승들에게는 그들처럼 행동하는 박쥐들 말이다. 어느 재미 가수는 돈은 한국에서 벌고싶고, 군 복무는 하고싶지 않아 미국에서 기회만 살핀다는 기사도 보았다. 가수만 그런 게 아니고,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박쥐들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미주 한인들의 복수 국적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그러나 남자는 한국군 복무를 필한 자라야한다. 군 복무가 면제되는 36세가 넘은 남자라도 한국 시민권을 가지려면 병역의 의무를 필해야 한단다. 병역의 의무는 “없는 자”들이 필해야하는 의무가 아니다. 그 나라 시민 모두의 의무인 것이다. 성경의 다윗도 골리앗과 전투를 치렀다. 그러므로 크리스찬들도 한국으로 가서 살려면 사나이로서 병역 의무를 필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천안함 희생 장병 중, 고 정 병구 병장 어머님의 “돈이 없어 보낸 군대…. 고통도, 군대도 없는 곳에서 잘 지내라.”는 한 맺힌 울음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이제, 돈이 없어 가는 군대가 아닌 남자라면 모두 가야하는 대한민국 군대가 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신성한 병역 의무가 아니라 “없는자”가 “있는자”를 지키게되는 부패한 병역 의무가 된다.
병영 훈련 중 목이 터져라 부르던 “진짜 사나이”라는 군가가 생각난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 너와 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 산 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라는 군가 말이다.
천안함 희생 장병 유가족에게 다시한번 조의를 표한다. 그들은 결코 “없는자”가 되어서 외롭게 군 복무한 것이 아니라, 사나이로서 의롭게 복무했었다. 그래서 “겉으로만 잘난 체해 사나이라더냐? / 너와 나 진짜 사나이 명예에 살았다...”로 시작하는 3절의 가사가 천안함 희생 장병 생각에 더 가슴을 찡하게 만들며 눈시울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