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꽃은 피어난다

2010-04-08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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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은 피어난다,
말 없는 가장처럼

펼쳐 든 석간 위에
흔들리는 손잡이에

저물어 무거운 발길
헝클리는 字母 위에.
가난 하나 뜨거운 가슴 시린 등을 부비면
얼룩진 우리들 두뺨, 감꽃은 피어난다
막내의 일기장 위로,
젖은 아내의 치마 위로.


눈감아도 오래 반짝일 단칸 불빛이여
버들개지 여린 숨결 저 결빙의 하늘 녹이고
바람꽃 한 송이 청산에 숨어 살고 있음을.

권갑하( 1958 - )


감꽃은 피어난다. 가장이 펼쳐든 신문의 글씨처럼 작게, 가난하지만 등을 서로 부빌 줄 아는 우리의 뺨 위에 환하게, 막내의 일기장처럼 순진하게, 아내의 치마처럼 촉촉하게, 결빙의 하늘을 녹이는 버들개지처럼 따뜻하게,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피어난다. 그러나 청산에 숨어있는 바람꽃 한 송이처럼 숨어서, 감꽃은 조용히 피, 어, 난, 다.

김동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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