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벌레와의 경쟁

2009-08-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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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뒷마당 화단의 잡초를 뽑다 우연히 덩굴딸기 한 그루를 발견했다. 새빨간 딸기 한 송이를 달고 있지 않았더라면 잡초려니 하고 무심코 뽑아버렸을 것이다. 전 집주인이 심어놓은 것 같았다. 딸기는 체리 크기로 자그마한데 그나마 벌레에게 먹혀 옴폭 패인 자국이 남아 있었다. 버릴까 하다 먹어보니 달콤새콤한 맛과 짙은 향이 요즘 표현대로 ‘환상’이요 ‘예술’이었다. 그 뒤 수확량이 지극히 저조한 이 딸기는 내 미각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나는 이틀이 멀다하고 출근 전 뒷마당에 나가 딸기 사냥을 벌였다. 그런데 먹음직스레 익은 딸기들은 대부분 집 없는 달팽이, 쥐며느리 따위의 벌레들이 선점하고 있었다. 가끔 벌레가 먹고 있는 딸기를 가로채 물에 닦아 먹어 보면 역시 맛이 일품이었다. 벌레들도 인간 뺨치는 미각을 소유한 것 같았다. 이 맛좋은 유기농 딸기를 더 이상 벌레들에게 양보할 수는 없었다. 나는 벌레들과 소리 없는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야무진 나의 각오에도 불구하고 나는 번번이 벌레들에게 당했다. 벌레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오로지 이들에게 당하기 전 선수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수를 쳐서 입에 넣은 딸기는 설익어 번번이 입맛만 버려놓았다. 서두르거나 부지런을 떤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벌레들은 나와의 경쟁에서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놈들은 밤잠도 자지 않고 딸기 곁을 끈기 있게 지키다 제 맛이 든 때를 귀신 같이 알아채고 덮치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심 끝에 살충제로 경쟁 상대를 제거하기로 작정했다. 미물 주제에 어디 감히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양식을 탐하다니. 놈들의 괘씸죄는 죽여 마땅해 보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곧 백지로 돌아갔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보증하는 자연산 유기농 딸기를 살충제로 오염시킬 수가 없었다. 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취할 도리가 아니요, 창조 섭리와 페어플레이 정신에도 어긋나는 치사한 짓거리 같았다.

나만 먹겠다고 대자연의 한 구성원인 생명체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다니.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고 해충인가? 해충인 모기도 그 애벌레인 장구벌레를 먹이로 하는 물고기 보기에는 익충 아닌가? 모든 생명체는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인데, 어떻게 인간이 주관적 판단에 따라 해충의 낙인을 찍어 그들의 생존권을 박탈할 수 있는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지구상에서 멸종된 생명체는 얼마나 될까? 인간처럼 탐욕스런 존재가 천하에 또 어디 있을까? 인류사에도 강자의 탐욕에 희생당한 약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더불어 사는 지혜가 참으로 아쉬운 요즘 세상에 벌레들은 나에게 큰 교훈을 안겨 주었다. 나의 적이 공공의 적이 아니요, 나에게 원수라고 만인의 원수도 아니다.

나는 뒤늦게 인간의 체통을 되찾았다. 벌레들은 나의 맛 감정사요, 내가 먹을 딸기의 품질보증인과 같은 존재이다. 경쟁의 관계에서 공생의 관계로 바꾸어 살기로 했다. 생태계 파괴의 주범인 인간은 더 이상 지구의 주인이 아니며 지구는 탐욕에 가득 찬 인간만이 사는 삶터가 아니다. 벌레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살벌할까?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생존권을 갖고 있다.

황시엽 / WA 고무 실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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