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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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미모의 종군여기자

2009-08-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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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한국전쟁 종전 기념일인 7월27일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법’에 서명했다. 이제부턴 해마다 7월 27일에는 미국 전역에 성조기가 펄럭일 것이다. 6.25전쟁의 총성이 멎고 휴전협정을 한지 56년만이다.

CNN 채널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의 긴장을 부추기는 누런 군복차림의 김정일이 자주 등장하면 아이들이 그가 누구냐고 묻는다. 분단국가인 한국을 외계인이 사는 낯선 나라로 알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날이 되지 않을까? 마침 선배로부터 미국 종군 여기자인 마게리트 히긴스에 관한 이야기와 라이프 잡지에 실렸던 그녀의 사진들을 이 메일로 받았다. 지금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그녀는 살아있다면 89세가 되는 할머니다. 그러나 그녀가 총알이 날아다니는 6.25전쟁 중의 최전방을 누비고 다녔을 때는 30세의 미모의 종군 여기자였다.

그녀는 한국전쟁을 취재한 외국 종군기자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얼굴에 화장품 대신 먼지와 진흙을 뒤집어 쓴 여자” “이브닝드레스보다 미군 전투복이 더 멋진 여자” “냇물에서 몸을 씻고 숲 속에서 용변을 보는 여자” “언론의 꽃,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름다운 종군여기자” 당시 미국 언론들이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종군기자인 마게리트 히긴스를 두고 극찬한 말들이다.


1950년 일본 동경 특파원으로 파견되었던 그녀는 6.25 전쟁이 터지자 한국으로 날아온다. 금발의 이방인인 그녀는 형제가 총 뿌리를 겨누고 싸우는 피로 물든 한국 땅을 밟았다. 북한군의 최후 방어선이었던 낙동강의 치열한 전선에서 들것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군인들에게 수혈을 했다. 현장취재에서 숨 가쁜 기사를 보내는 순간에도 어린 참전 군인들의 누나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에서 피어난 하얀 들꽃이었다.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은 인천 월미도에 기습 상륙을 하고 서울을 다시 손에 넣는다. 그녀는 해병들과 함께 인천 해안에 상륙하는 기사를 목숨을 걸고 보도해 국제보도부문 퓰리처상을 받게 된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목숨을 담보로 쓴 기사다.

한국전쟁이 종식되면서 몇 겹의 넝쿨 철조망이 쳐진 한반도의 군사분계선인 휴전선은 이산가족의 비극을 잉태했다.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6.25 전쟁은 기억상실증 환자들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미국에서 2차 대전 중 나치 대학살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홀로코스트 기념관과 단체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히긴스는 두 갈래로 찢어지는 비극을 잉태했던 ‘한국 전쟁’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표지에 실린 미군 전투복과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다. 불꽃 같은 미모의 종군여기자는 1966년 동남아시아에서 취재 중 기생충 감염에 의한 열병으로 고국으로 돌아와 치료 중 46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그녀가 발로 뛰며 쓴 현장취재의 살아있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박민자 /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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