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배우며- 목마른 지구

2009-08-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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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들리는 소나기 소리에 눈을 떴다. 일찍 일어난 남편이 호스로 물을 주고 있다. 정부의 급수제한으로 나무들이 하나 둘 말라 죽어간다.

우리 집은 정원이 꽤 넓은 편이어서 멋지게 가꾸려면 많은 물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의 빈민을 생각하면 그것도 사치라고 생각되어 가뭄에 견디는 꽃나무를 사다 심으며 물을 절약했다. 오래 전부터 쌀을 씻거나 야채와 과일을 헹구는 일마저도 마당에서 하며 물을 재활용해 왔다.

세계 곳곳의 가뭄현상이 심각하다. 남가주는 콜로라도 강물을 끌어와 tM지만 주민들 중에는 아직도 물이 얼마나 부족한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수도세가 렌트비에 포함되어서인지 더욱 물 귀한 줄을 모른다. 아파트의 주민회의를 통해 협조를 요청하지만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우리 집 물은 내 것이지만 체육관에 가서 쓰는 샤워장의 물은 남의 돈이니 상관없다는 식의 사람들도 있다.

샌디에고에도 드디어 급수 제한령이 내렸다. 6월부터 10월까지 정원에 물을 마음대로 줄 수가 없다. 우리 집 주소가 짝수번호이니 월·수·토요일만 가능하다. 그것도 호스를 사용하면 10분 이상은 안 된다. 오후 6시가 지나서 오전 10시 사이에만 물을 줄 수 있다. 자동차 물 청소법도 마찬가지다.

나의 친정 부모님은 흘러가는 물일지라도 함부로 쓰면 벌을 받는다고 우리를 가르치곤 했다. 우리 집은 맨 나중에야 수도관을 설치했기에 이웃집 수돗물을 얻어 와 세수를 하며 나는 자랐다. 펌프 물은 비누가 잘 풀리지 않아 부모님은 비누가 잘 풀리는 빗물을 받아 모으곤 했다.

대학 시절 지대가 높은 대구의 신암동에 살적에는 밤이 되어야 수돗물이 나왔기에 오밤중에 목욕하고 빨래를 했다. 쓸고 닦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물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아, 물이 없는 세상. 무서워진다. 그러기에 있을 때 아껴야 한다.

나도 딸에게 어머니처럼 물 절약정신을 전달했다. 처음에는 딸이 짜증을 내었지만 이제는 즐겁게 동참한다. 작은 물통을 들고 하루에도 수십 번 정원을 들락거리던 나를 무심히 보던 남편도 드디어 자원했다. 자기가 날라다 주겠으니 허드렛물을 모으라며 큰 버킷을 하나 사왔다. 지금 우리 집 부엌에는 빨강 플래스틱 버킷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화장실도 문제다. 재래식 변소를 사용하며 자란 우리들, 이젠 물의 고마움도 잊어버렸나. 절수용 변기가 개발되고 있지만, 한번에 서너 대야의 물을 소비하는 현대식 변기도 개선되어야 할 연구과제이다.


남편은 죽어가는 무화과 나무를 살려보겠다며 이른 아침 정원에 나가 물을 주고 있었다. 아침 7시이지만 쨍 내리쬐는 햇볕에 물은 곧 증발하고 있다. 10분이 지난 것 같다며 남편에게 절수규칙을 알려야 했다.

우리 몸이 거의 물로 구성되었듯, 수도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물이 없는 세상은 곧 죽음이 아닐까.

최미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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