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황혼을 위하여

2009-07-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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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동안이나 한 자리에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은퇴라는 장밋빛 방명록에 이름을 올린지도 벌써 1개월, 지금까지도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가 된 듯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주저된다. ‘매일이 일요일’이라는 먼저 은퇴한 친구의 행복한 미소를 동경했었는데, 막상 책임이나 의무에서 해방되니 여백의 잉여시간이 흰 자막으로 앞을 가리고 매순간 눈앞에 횃불처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주위 지인들의 축하와 격려 속에 삶의 지혜가 반짝이는 조언들이 있어 이제 다른 세계로의 동참에 마음을 다지고 있다. 학창시절 탐독했던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은 내 정신세계를 흠뻑 물들였었다. “불확실한 미래의 세계나 지나간 세월의 노스탤지어에서 벗어나 현세의 삶에 모든 가치를 두고 인생을 향유하라. 그리고 현재의 매 순간에 충실하고 즐겁게 살라”고 한 그의 글이 이제 은퇴라는 무지개를 넘어선 지금 더욱 새롭게 음미하게 된다.

요즈음 노인들에게 인기 있는 ‘9988234’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아프다가 죽는 것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캐치프레이즈다. 이런 상황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적, 정신적, 사회적인 것과 건강문제 등 여러 여건이 충족되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삶의 질은 모든 것을 초월해서 맑은 정신에서 출발하기에 ‘9988234’는 이제 99세까지 88하게 이삼십대의 마음으로 4(살자)로 재해석되고 있다고 한다.

65세 이상의 연령층이 경청해야할 소위 노년사고(老年四苦)는 빈 고(貧苦), 고독 고(孤獨 苦), 무위 고(無爲 苦), 병 고(病苦)인데 가난과 고독과 할 일 없음과 병드는 것을 최대한 비켜가게 하기 위해서 우선 육체적 건강을 지켜야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다.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해서 어려움을 이겨나가며, 인간은 그 누구라도 마지막에는 ‘혼자’일 수밖에 없고 오는 길이 혼자였듯이 가는 길도 ‘혼자’라는 것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며 영육의 단련으로 삶을 좀 더 편안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 소노아야꼬의 ‘아름답게 늙는 지혜’에서 기억되는 것들을 간추려 보면, 새로운 기계사용법을 적극 익힐 것, 평균 수명에 오르면 공직에 오르지 말 것 등이 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돈을 어떤 템포로 쓰는 것이 아름다운 여생을 보내는 길일까 보다 90세까지 산다는 계산으로 있는 돈을 다 써버리기로 하면 더 편하다고 한다. 인생이란 이웃과 더불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므로, 노년에 멋있는 삶을 살려면 사람들과의 이해와 사랑을 단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노년의 생활’을 위해서는 다음의 12가지 사항이 음미할 만하다. 말 수를 줄이고 소리를 낮추며, 행동은 느리되 신중하게 하며, 탐욕을 금하며, 좋은 음식을 잘 가려 먹고, 삶의 규모를 정해 진실한 생활을 할 것이며, 젊은이에게 대접만 받으려 하지 말고 예절을 지키며, 절제하는 삶에 아름다움이 있으며,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더 넓어 보이며, 인내하며, 경험이 풍부해도 계속 배우며, 손에 잡고 있는 것을 언제 놓아야 할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학자 데오프라스토스는 “시간은 인간이 소비하는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했듯이 은퇴한 사람들은 아름다운 황혼을 위하여 철저한 시간관리와 건강관리로 여생을 의의 있게 보내는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김인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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