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을 하는 어려움

2009-07-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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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知者不言)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言者不知)”란 노자의 말이 있다. 노자의 이 말은 “지식이 많은 사람은 함부로 말을 하지 않으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올바른 지식을 지니지 않고 있다”란 뜻으로 풀이할 수가 있다. 물론 노자가 꼭 이러한 뜻만으로 한 말은 아닐 테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이처럼 해석해 보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범주에 목사가 들어 있다.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나는 설교를 했을 뿐만 아니라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말을 무척 많이 했다. 게다가 언론에 글까지 써댔으니 참 말도 많이 하고 산 셈이다. 노자가 한 말을 되새겨 보면 나는 깊은 지식이 없는 사람인 꼴이다. 말을 많이 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오늘 이른바 숱한 지식인들이 말을 많이 한다. 이 말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 주기도 하지만 이 말들 때문에 세상이 무척 시끄럽기도 하다. 말들이 보통 타당성을 띠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저께는 희다고 말하고선 오늘은 검다고 말을 뒤집는 지식인들도 제법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삶의 본을 보여 준 이른바 4대 성인들이 한 말일지라도 그들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그 까닭은 그들은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을 믿고 살던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때의 세계관에 따라서 말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을 한 번 들어 보자. 예수가 부활한 뒤 하늘에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는 구름을 타고 이 땅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구름은 물방울의 뭉치다. 어떻게 이런 구름을 타고 오르내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1세기 때 살던 사람들은 이 우주가 삼층 구조로 이루어졌다고 믿고 있었고 따라서 구름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구름다리쯤으로 여겼었다. 그래서 그때의 세계관에 따라서 예수는 그처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할 때 그 사람의 성품이나 배경을 모르면 그 사람이 한 말의 진위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절대적인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학문적 이론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내용이 뒤바뀌게 되는 수도 있고 21세기에 진리라고 믿었던 말이 22세기에 이르러서는 허위로 바뀌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토마스 칼라일은 “침묵에서 깊은 생각이 떠오르고 덕스러움도 우러나온다”고 했다. 그가 나더러 시끄러우니 입을 다물고 글도 쓰지 말라고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척 조심스럽게 이 글을 쓴다.

윤경중/ 명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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