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생을 잇는 사랑이야기

2009-06-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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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고, 충격적이며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소설 한편을 읽었다. 소설을 읽자마자 타이태닉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과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남자주인공 랠프 파인즈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동명의 영화를 보았다(케이트 윈슬렛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는 꽤 잘 만들어져서 소설의 느낌을 충실히 전달한다. 이 소설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이후 독일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고도 한다.


“내 나이 열다섯이던 해에 나는 간염에 걸렸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그녀의 무덤 앞에 선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로 끝난다. 15살 소년 미하엘은 길을 가던 중 간염으로 인해 심한 구토를 일으키고 우연히 소년을 지켜 본 서른여섯의 여인 한나의 도움을 받게 된다. 며칠 후 미하엘은 감사인사를 하러 그녀를 다시 찾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며 세상에 밝힐 수 없는 비밀스런 연인이 된다.

미하엘과 관계를 가지기 전 “꼬마야, 꼬마야, 내 꼬마야. 책 좀 읽어줘”라고 말하는 한나.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기’ - 어느 새 이것이 두 사람 만남의 의식이 되어 간다.

<오디세이> <에밀리아 갈로티> <간계와 사랑> 등 미하엘이 한나에게 읽어주는 책의 수는 늘어가고, 사랑이 깊어 갈수록 한나의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어느날 그녀는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8년이란 시간이 흘러 미하엘은 법대생이 되고 우연히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법정에 참관하게 되는데 거기서 피고석의 한나를 보게 된다. 진행되는 재판을 빠짐없이 참관하는 미하엘에게 드러나는 진실은 충격적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내가 속한 나라의 사회역사적 경험이 정면으로 대립하고 충돌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모른 척 외면하고 등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걸고 자기를 희생하며 구원자로 나설 것인가?

주인공의 선택은 뜻밖에도‘책 읽어 주기’였다.

사랑이야기이지만 결코 사랑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이 소설. 오랜만에 문제작을 읽었다는 느낌과 함께 소설과 영화가 합세해서 주는 여운은 꽤나 오래갈 것 같다.

이형열(알라딘 서점 대표)
www.alad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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