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군 땅끝 마을에서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걷고 돌아왔다. 땅끝 마을에서 백두산까지 걸어가겠다는, 통일기원 국토종단 1차 목표를 끝냈다. 지난 3월 30일 시작하여 5월 3일에 마무리를 했으니 총 35일이 걸렸지만, 일요일을 비롯 개인적인 사정으로 걷지 못한 5일을 빼면 30일이 소요된 셈이다.
시작하던 날 아침. 땅 끝에 섰는데 문득 김지하 시인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가 반도 마지막 땅 끝에 서서 써내려 갔다는 ‘애린’이라는 시 한편이 떠올랐다.
땅 끝에 서서 /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 /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 새 되어 날거나 / 고기 되어서 숨거나 ... / 혼자 서서 부르는 / 불러 / 내 속에 차츰 크게 열리어 / 저 바다만큼 / 저 하늘만큼 열리다 / 이내 작은 한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 한오리 햇빛 / 애린 / 나 .
새되어 날 수도, 고기되어 숨을 수도 없는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끝내 희망을 지켜냈던 시인을 기억하면서, 절망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가 한 약속을 떠올렸다. 국토종단을 위해 미국을 떠나면서 두 가지 약속을 했다. 해외동포의 한 사람으로 통일에 대한 열망과 당위성을 널리 알리겠다는 약속. 힘들고 어려운 많은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드리겠다는, 힘들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마침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걸어가면서 이 약속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발바닥이 부르터 쓰려올 때, 비바람 치는 산길을 홀로 걸어갈 때, 자동차에 치어죽을 뻔한 아찔한 경우를 당했을 때. 중단하고 싶은 유혹이 일기도 했다. 그때마다 약속이 떠올랐다. 뚜벅뚜벅 걸어갔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던 날, 많은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게 된 나 자신에게 감사했다.
이번 여정을 국내 매스컴도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 주었다. 시작하는 날 MBC TV를 비롯한 경향신문, 광주매일신문, 광주일보 등에서 보도를 했다. 끝나는 날은 연합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 신문에 보도가 되었고 강원일보, 강원도민신문도 따로 취재를 했다. KBS 제1방송과 제3방송과의 대담프로를 통해 국토종단의 의미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이번에 걸었던 길은 직선으로 약 800킬로가 되는 거리다. 구불구불 2천리가 넘은 산천을 걸어가면서 그 산천에서 살고 있는 농민들, 어민들, 장사하시는 분 등, 많은 분들을 만났다.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나이든 분들을 위해 생겨난 2년제 야간학교를 방문하여 5,60대 늙은 고등학생들을 만나보았다. 어렵지만 당차게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진솔한 삶의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탈북자 아이들이 다니는 한겨레 고등학교, 각종 대안학교, 조선대학교를 비롯한 대학을 방문하여 젊은이들과 얘기하고 그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1차 목표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2차 목표인 백두산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계획했던 한반도 국토종단을 마무리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기도하고 성원해 주시면 고맙겠다.
다녀온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 한국일보 특집판을 통해 전해드리고 있다. 한국일보 웹사이트를 보시거나 내 블러그
에 들어가 보시기 바란다.
정찬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