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김창만 칼럼/ 겸손의 힘

2009-06-20 (토) 12:00:00
크게 작게
김창만 목사 <온누리순복음교회>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의 시집 “순간의 꽃”에 적혀있는 짧은 시이다. 시라기 보다는 한 줄의 잠언 같다. 시인은 여기서 겸손의 눈을 갖게 된 후 새롭게 열린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겸손하면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우고 낮출수록 속에서 신비한 힘이 나온다는 것을 노래한다.

기성자. 그는 싸움닭을 만드는 일로 장안에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그는 왕의 부름을 받고 싸움닭을 훈련시키게 되었다. “이제 준비되었는가?”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제 기운만 믿고 마냥 사납기만 합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다시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도 다른 닭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보아도 곧 달려들어 싸우려고 난리를 칩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다시 물었다. “아직도 덜 되었습니다. 다른 닭을 보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데 그 눈에 교만과 아집이 가득합니다.“ 또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다시 물었다. ”이제는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아무리 소리를 치고 덤벼도 전혀 동요함이나 자세의 흐트러짐이 없어서,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하여 신비한 위엄이 있기 때문에 다른 닭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나고 맙니다.“ 장자의 우화 ”목계“에 나오는 말이다.


견주어 말하자면, 싸움 닭 중에서 제일 하수는 마음속에 교만이 가득한 자다. 중수는 싸우기만 좋아하고 허세가 가득한 자다. 최고수는 상대가 무어라고 해도 동요함이 없이 겸손한 자다. 자신을 낮출수록 신비한 힘이 나온다는 것을 기성자는 알고 있었다. 인류 역사를 통 털어볼 때 가장 겸손한 분은 예수이다. 그는 신비한 하늘의 권능과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 십자가 위에서 풀잎처럼 낮아졌고, 그곳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의 높이를 보여주었다. 그가 얼마나 겸손했는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겸손히 십자가를 지셨을 때, 인류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그를 주라 시인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성경은 인류에게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어 배우라고 말하고 있다(빌립보서 2:5).

진정한 겸손에는 신비한 힘이 나온다. 사람을 끌어당겨 새 역사를 창조하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모세가 겸손을 알았을 때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고, 겸손한 목동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왕이 되었으며, 바울이 겸손을 따라 살았을 때 소아시아와 로마를 복음화 하여 2천년 기독교 역사의 초석을 닦았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자주 인용하는 우화가 있다. 어떤 호수가에 개구리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어느 날 공중으로부터 큰 학 한 마리가 내려와 앉았다. 그 광경을 본 개구리들이 서로 말했다. “우리도 저 학처럼 공중에 올라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그 때에 한 개구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학에게 다가갔다. “나도 너처럼 공중에 날아가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겠니?” 이렇게 물었다. 학은 개구리의 말을 듣고 어떻게 도와주면 되느냐고 물었다. “지금 여기 있는 긴 막대의 한 끝을 물고 올라가라. 나는 다른 끝을 단단히 물겠다.”고 했다.
그래서 학은 한 끝을 물고 개구리는 다른 한 끝을 물은 후 함께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때였다. 아래에 있던 개구리들은 모두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저런 놀라운 생각을 누가 하였는고, 누가 하였는고.”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때 공중에 있던 개구리는 너무 기뻐서 “내가 했지!”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나중의 결과는 상상에 맡긴다.

오늘날 한국의 지도자들을 보면 “내가 했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남북전쟁의 깊은 상처를 싸매고 치유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은 전부 272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안에는 “나(I)라는 단어가 한 자도 안 나온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깊이 새겨들었으면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