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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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한 줌에 80달러

2009-06-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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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려운 뉴스가 대서특필되고 있다. 구단 양키즈가 새 경기장을 만들고 옛 경기장의 기물과 흙까지 팔 것이라고 한다. 몇 가지 가격표를 보면 운동장 흙 한 줌에 80달러, 내야 잔디(4×80’) 6,000달러, 외야 잔디(20×20’) 1만달러, 맥주 광고판 500달러, 관객 의자 두 개 1,500달러, 감독 의자 5,000달러, 공중전화 부스 1,000달러, 잔디 위의 양키즈 로고는 무려 5만달러이다.
아무리 유서 깊은 야구장이라지만 흙 한 줌을 80달러에 팔겠다는 것은 너무 심하다. 돈은 선도 악도 아니지만 욕심과 합치면 악마의 도구가 되고 선의와 손잡으면 보물이 될 수 있다.

지난 5월9일은 미국 ‘철도의 날’이었다. 필라델피아와 시카고에서 초창기 포터(porter)에 대한 감사 행사가 있었다. 초창기 포터란 20세기 초에 기차 내부나 정거장에서 심부름하던 일꾼들을 가리킨다. 생존자는 모두 90대이다. 그들은 철도국이 주는 봉급이 없었으며 팁이 유일한 수입이었다. 그들은 무조건 손님들에게 친절하였으며 팁을 안 주어도 불평하는 일이 없었다.

흑인이 대거 직장을 구한 것이 바로 포터였으며 흑인 노조를 처음 조직한 것도 포터들이었다. 포터는 미국 민권운동사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은 손님의 피부 색깔이나 언어의 차이를 가리지 않고 철도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였다.


돈의 유혹을 넘어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돈의 올무에 걸려 침몰한 수많은 한국의 정치인, 실업인, 종교인들을 우리는 보아왔다. 영어로 바보를 ‘idiot’이라고 하는데 그리스어로 ‘수전노’라는 뜻이다. 교육도 많이 받고 신앙이 있어도 돈과 권력과 정욕에 빠지면 스스로의 생애를 ‘바보 인생’으로 만드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하게 된다.

영국의 작가 섬머셋 모엄의 명작 ‘달과 6펜스’가 있다. ‘달과 6펜스’라는 대조는 영국인에게는 이해가 쉽다.

6펜스는 영국 은화 중 최저액이다. 따라서 달은 고상한 것의 대표이고 6펜스는 저속한 것의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달도 6펜스도 모두 은색으로 빛나는 둥근 모양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인 화가가 순수하게 추구하는 예술을 달로 표현하였고, 명예나 돈을 최고로 삼는 인간의 세속적인 이상을 6펜스로 비유하고 있다.

‘달의 사람이 될 것인가, 6펜스짜리 인생을 살 것인가?’ 어려운 선택이긴 하지만 결국 그것이 문제다.

아동문학가 강소천의 동시 ‘닭’이 있다. ‘물 한 모금 머금고/ 구름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머금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닭의 물 마시는 동작을 시인은 찬란한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닭은 물을 머금기 위하여 우선 땅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지만 그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기 위하여 하늘을 향하여 고개를 든다. 이런 닭의 평범한 움직임을 보며 사람도 하늘과 땅을 50%씩 균형 있게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작가의 사상이 드러나 있다.

방송극에 자주 나오는 대사로 “다 먹자고 하는 짓이 아닙니까!”라는 구절이 있다. 정말 나의 노력이 먹자고 하는 짓인가? 길어야 100년쯤 살고 리허설도 재공연도 후반전도 없는 인생인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어설픈 변명으로 나의 하나뿐인 인생이 설명될 수는 없을 것이다.

줄타기 곡예사 브론딘이 나이애가라 폭포에서 야간 줄타기를 감행하였다. 그는 관중도 폭포도 보지 않고 밤하늘의 별 한 개를 정하고 그것만을 바라보며 동아줄 위를 걸어갔다고 한다.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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