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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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의 미국 여행기

2009-06-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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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김동영 지음| 달 펴냄


감성적이고, 예술적 기질이 강한 서른 살 즈음의 한 청년이 잘 다니던 방송국에서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듣는다. 그는 크게 주저하지 않고 얼마 되지 않는 전 재산을 털어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미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도착하자마자 중고자동차를 구입하여 자기의 생일선물로 자신에게 바치고 저 유명한 잭 케루악의 ‘On the Road’에 나온 여행 여정을 밟아 Route 66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230일을 미국의 길바닥을 헤맨다. 헤매는 도중 사진도 찍고, 일기도 쓰며 낯선 환경에 자신을 무방비로 노출한 채, 고행도 수도도 아닌 젊은 날의 영롱한 추억을 만들어 나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청춘 예찬이다 뭐다 해서 젊음을 미화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청춘에 대한 생각은 도올 선생이 인용한 화이트헤드의 정의와 부합한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저서 <관념의 모험>에서 ‘청춘의 가장 심오한 정의는 아직 비극에 노출되지 않은 생명(The deepest definition of youth is, life as yet untouched by tragedy)’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청춘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청춘의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은 삶의 도전이 찾아왔을 때 수동적으로 응대하거나 아니면 한사코 문제를 회피한다. 하지만 한 젊은이가 근본적인 차원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이 무엇을 가장 잘 할 수 있는지, 자신이 가장 동경하는 삶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기 위해 무작정 길을 떠나 아는 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 아무도 자신의 어리광을 받아줄 곳 없는 곳에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부대껴 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값진 성년식이라 할 것이다.

저자는 아마도 끊임없이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의 글은 생각보다 절제되어 있다. 이런 내면의 치열한 엉클어짐을 다 보여준다기보다는 조금은 담담하게 자신이 여행하면서 겪었던 미국에 대해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서, 그가 존경하는 작가 잭 케루악을 통해서 그의 내면세계와 젊은 날의 불안과 고통을 읽을 수 있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의 사진은 이 책이 사진작가의 사진집이 아닐까 할 정도로 예술적이다.

이형열(알라딘 서점 대표)
www.alad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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