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기억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2009-05-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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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63년에 걸친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예리한 질문으로 스타가 되더니 1990년 3당 합당 당시에는 정치적 소신을 지켜 고난의 길을 택했고 6년 만에 종로 재보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그는 16대 총선에서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부산에서 출마, 그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바보 노무현’을 지지하는 노사모라는 지지 세력을 얻었고 낙선했지만 2001년 국민의 정부에서 해양 수산부 장관에 발탁됐다. 새천년 민주당의 국민경선에서 16대 대통령 후보가 되었지만 당내 후보교체론을 극복하고 한나라당 후보를 근소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소수의 비주류로 일관하던 노대통령의 당선은 깨끗한 정치와 지역주의 극복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결집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상도동이니 동교동이니 하는 계파도 없었고 2002년 대선후보 경선 시는 현역의원도 아니었다. 그를 지지한 의원은 천정배 하나뿐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 지역구도 타파, 정경유착 근절, 남북관계 개선, 서민경제 구축을 위해 과감한 정책을 시행했다. 승부사였던 그는 원칙과 소신에만 의존하는 국정운영으로 갈등과 혼란도 야기했다. 그래서 적도 많았고 강했기에 미움도 많이 받았다. 2004년에는 탄핵소추안으로 대통령 직무 정지라는 절체절명의 고비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국 원제 때 궁녀 왕상이 자기의 미모를 믿고 궁중화가인 모연수에게 뇌물을 쓰지 않아 추녀로 그려졌던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를 믿고 정의롭고 차별 없는 세상을 일구어 나가면 되겠지 하는 소신으로 정치를 해 나갔다. 그는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고 자기를 헐뜯는 자들에게 잘 봐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의 온 집안 식구들을 마녀 사냥하듯 범죄자로 몰아부쳐 자존심을 건드렸고 명예를 떨어뜨렸다.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키면서 “당신은 나의 영웅이십니다” “당신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었던 저의 유일한 대통령이셨습니다”라며 그의 영전에 바치는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DJP정권이 들어설 즈음 그와 만난 자리에서 내가 “민주화를 위해서는 혼자 할 수 없다. 민주화를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가 치르는 일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하자 노 전 대통령이 원칙을 내세우며 역정을 내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벗겨 내 좋은 세상을 만들려 했지만 여러 가지 한계 속에서 큰 좌절을 맛보았다. 또 지탄과 핍박도 많았다. 누군가가 그에게 “싫어하는 사람도 포용하고 반대 세력도 보듬어 너그럽게 해야 한다”고 말씀 드리자 “나도 그 정도는 압니다.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겁니까”라며 웃으면서 받아 넘기던 모습도 선하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주 살가운, 정이 넘치는 대통령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것이 끝났다. 가슴이 갈수록 먹먹해 진다. 님은 가셨지만 빈들에는 그가 뿌린 많은 씨앗들이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부디 고이 잠드시고 평안하소서.


김병창/ 남가주 추모위원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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