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위급하다. 직면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여유조차 없다. 긴급한 도움과 응답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때가 있는가? 단음의 짧은 어조이지만 간절하고 강력한 갈망을 담아 하나님께 쏘아 올리는 화살기도를 배우라. 화살기도는 한 마디로 말하면 긴급전보와 같다. 긴급전보를 보낼 때 거치는 곳이 많다든지 말 수가 많으면 긴급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살기도의 핵심은 긴급전보처럼 짧으면서 간단 투명하고 애타는 간절함에 있다.
야곱이 20년의 긴 타향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붙들고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라고 기도한 것, 출애굽하던 모세가 가로막힌 홍해바다 앞에서 ‘주여 우리를 구원 하소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소서.’라고 기도한 것, 원
하는 아들을 갖지 못해 극심한 슬픔과 멸시를 겪었던 한나가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주의 여종을 기억하사 종에게도 아들을 주옵소서.’라고 다급하게 간절히 기도한 것들이 다 화살기도에 속한다.
성경에 기록된 가장 모범적인 화살기도는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던 중 급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입에서 나왔다. 그 당시 예수님은 긴 사역을 마치고 잠간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제자들과 함께 작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갈릴리 바다에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와 거센 풍랑을 일으키면서 그들이 타고 있던 배를 심하게 흔들어대었다. 제자들은 두려워 떨며 배의 난간을 붙들고 앉아있기도 힘든 상황인데 예수님은 그저 편안하게 주무시고 있었다. 사태는 심각했다. 평생을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베드로였지만 이런 거대한 풍랑은 처음으로 보았다. 그때 제자들은 다 한 목소리로 ‘주의 구원 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마8:25)라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다급하고 불안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바람, 풍랑’이란 단어조차 생략되어야 했다. 그들의 기도는 다만 짧고 단순하며 정확하게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화살과 같은 것이어야 했다.
제자들이 부르짖는 외마디 소리에 깨어나신 예수님은 ‘너희들이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는 곧바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이것이 화살기도의 전형이다.
당신은 폭발력이 있는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는가? 기도 생활의 새로운 지경을 얻기 원하는가? 특별한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순간순간을 하나님의 임재로 뜨거워지며, 그분의 영광의 빛을 보는 강력한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는가? 이제 당신도 거센 풍랑을 만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얍복강가의 야곱처럼, 홍해 앞에 선 모세처럼, 아들의 달라고 성전에서 울부짖던 한나처럼, 문제와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을 문제해결의 표적으로 삼고 쏜살같이 쏘아 올리는 화살기도를 배우라.
화살기도는 특별한 장소도 필요 없고 형식도 필요 없다. 서론도 필요하지 않다.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서 단순하게 투명하게 솔직하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라. 이것이 화살기도이다. 어떤 꾸밈이나 형식도 서론도 없는 단순한 화살기도가 속히 응답받는 이유는 화살기도를 드리는 자가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굳게 믿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낮선 사람을 만나면 서로를 알기 위해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는 침묵도 눈빛도 단 말 한마디도 충분한 대화의 통로가 된다. 하나님 앞에 짧고 단순하게 쏘아 올리는 화살기도가 되려면 말수가 많을 필요가 없다. 다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
고 간절하게 울부짖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
기도의 실천은 곧 믿음의 실천이다.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많은 말과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기도의 본질을 약화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화살기도의 대통령으로 잘 알려진 아브라함 링컨에게 어떤 사람이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링컨은 ‘우리 북군에게 로버트 리 장군과 같은 명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런 명장이 없었기 때문에 링컨은 백악관의 기도의 골방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하나님께 쏘아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힘으로 승리했다. 기도의 승리는 곧 삶의 승리이다.
김창만 목사 <온누리순복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