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명도와 김

2009-05-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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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 휴가를 얻어 위스컨신 주와 미시간 주에 있는 친지를 방문하기로 했다. 동료들에게 말하니 반응이 두 종류였다.

반응 1: “부모님이 멀리 계신데 가서 뵙게 되었으니 잘 됐어. 좋은 시간 보내. 나도 멀리 계신 우리 부모님을 자주 가서 뵐 수 있으면 좋겠는데”
반응 2: “조용히 잘 있다 오기 바래. 너무 혈압 올리지 말고. 부모 형제들 때문에 열이 좀 오르겠지만 되도록이면 참고 있다가 와. 난 부모님한테 자주 찾아가지 않아도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반응 2의 어느 정도가 미국문화를 반영하는 걸까? 현대 미국문화는 부모가 우리에게 얼마나 해를 끼치고 있는 가를 고백해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토크쇼나 영화에서도 쉽게 본다.

지난해의 미국 인기영화 중엔 ‘레이철 결혼하다(Rachel Getting Married)’라는 영화가 있다. 한 여자가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키 위해 마약중독자 회복시설을 벗어나는 얘기다. 커네티컷에 사는 그녀의 가족은 고학력의 부자로 외부에서 봤을 때만 정상적으로 기능을 한다. 한 가정의 기능여부는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음을 말하는 영화다.

가족처럼 문화를 대변하는 것은 없다. 모든 인류학 교과서는 가족 간의 유대관계에 대해 긴 설명을 한다. 그리고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 모두는 결혼을 하자마자 복잡한 가족관계에 얽혀 들어가게 된다.

그런 복합적 문화 속에 사는 부모로서 자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들이 어렸을 때 내가 정신적 상처를 준적은 없었나? 아이가 얼굴은 웃고 있는데, 마음도 웃고 있는 걸까? 슬퍼 보일 땐, 내가 예전에 뭘 잘못해서인가? 하는 생각조차 드는 것이다. 우리 부모세대는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았을 텐데.

나의 한국친구들은 미국인 가족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솔직한 가에 놀란다. 할아버지 앞에서 소파에 눕는다든가 아버지를 형처럼 대하며 농담하는 등 어른들을 스스럼없이 대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내 마음 상하게 하는 일을 말하는 것에도 놀란다.

하지만 나로선 오히려 한국인들이 가족 간에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을 가슴 속에 넣고 사는 일에 놀란다. 그래서 한국인들로부터 ‘마음에 묻는 일’을 많이 배웠고 자제하는 일도 배웠다. 진실인 경우에도, 말을 꺼내면 득이 되는 경우에도, 사람들의 기분 을 상하게 할 것이라면 입을 다물어 ‘분위기를 망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배운 것 이다.

물론 솔직한 대화를 억제하는 그 반면엔 ‘한’이 존재한다. 그 ‘한’은 점점 커져서 결국엔 ‘폭발’하고 만다. 압력솥의 기압이 높아지게 되면서 결국엔 뚜껑이 터져 버리는 상황과 다름없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건강하려면 조금씩 ‘김을 빼야’ 한다.

비즈니스에는 ‘투명도’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특히 요즘에 더욱 입에 오르내린다. 최근의 금융회사 파산은 투명도가 낮았음에서 비롯되었다. 높은 투명도는 실생활에도 큰 도움이 된다. 부모의 생활과 생각이 어떤지를 알면 부모를 훨씬 이해하기가 쉽고, 부모가 나의 생활과 생각을 알면 나를 이해하기가 훨씬 쉬운 것이다. 가족관계가 원활할 때를 보면 높은 투명도가 동정심을 유발했음을 엿볼 수 있다. 마찰이 있는 경우를 보면 뭔가 불투명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자제력을 잃지 않고 너무 느리게 ‘김’을 빼게 되면, 높은 투명도로 인해 생기는 동정심을 없앨 뿐이다. ‘김’이 유리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양상이 되는 것이다.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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