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머님이 남기신 편지

2009-05-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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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이 되고 어머니날이 오면 40년 전 어머님이 보내주신 편지가 추억과 함께 상기된다. 60년대 학교 졸업 후 짧은 사회생활을 끝으로 결혼해서 2달된 딸을 안고 한국을 떠날 때, 여행 가방에 넣어주신 스코프박사의 육아책과 요리책은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사회경험과 사교생활이 서툰 내가 연년생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나고 있을 때, 육남매를 키우신 경험 많은 어머님은 막내딸인 나에게 인생철학과 경험담이 담긴 장문의 편지를 보내셨다. 어머니의 그 편지는 마지막 편지가 되었다.

경험이 없는 일에는 이해가 무디었던 젊은 시절, 경험 없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의 끈임 없는 충고와 채근 덕분이었다. 가정생활에서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괴롭게 터득하기 시작하던 때, 저녁때가 되면 아이들 말에 대꾸하느라 양쪽 턱관절이 아파 오고, 지쳐서 불평할 기력도 없던 그 시절에 어머님의 편지는 가로 세로 씨줄을 맞추어 내 생활을 붙들어 주었다.


어머님은 성공적인 인생과 처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실재경험의 예를 들어 어떻게 그 어려움을 극복하며 소화해 나가는지, 또 그렇게 이겨내는 과정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보람이 되는 지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남편의 성공적인 미래가 곧 나의 미래와 합일되므로 남편이 성공적인 직업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은 아이들 키우며 육체적으로 힘겹겠지만, 지금 너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환히 보이지만, 한숨과 체념 대신 미소와 관용으로 너의 가정을 웃음과 행복의 안식처로, 매일매일 생활의 재충전 장소로 만들라고 충고하셨다.

어머님이 이승을 떠나신 지 벌써 17년이 지났다. 돌아가셨을 당시에는 세상이 갑자기 막막하고 보호막 없는 과육으로 남았다는 공허함으로 괴로웠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진정되었지만, 어머님의 편지에 담겨있던 의미는 내 사고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님은 내게 동화책으로 문학의 아름다움을 터주신 분이 아닌가!

20세기 자식교육에 미친 어머니의 교훈과 가이던스는 대단히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 그 예로 실존철학자인 사르트르의 어머니인 안느마리는 전형적인 자유와 깊은 사랑의 가정교육을 했다. 사르트르는 외할아버지의 장서로 가득 찬 도서실에서 마음껏 독서를 하고 상상력을 키워 20세기 중반에 실존주의로 세계적인 사상가가 되었으며 세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반면 헤밍웨이의 어머니인 그레이스는 다재다능한 어머니로 아들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상반되는 대단히 엄격하고 강압적인 가정교육으로 대조를 이루었다.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헤밍웨이는 친구들에게 자기 어머니를 ‘저크!’라고 말할 정도로 관계가 좋지 못했다. 그는 평생 여성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여러 번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며, 노벨 문학상은 받았지만, 그가 가정에서 행복을 누렸는지는 의문이다.

유태인의 탈무드에 의하면 최초의 교육자는 여성이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의 기본적인 구상을 최초로 여성에게 주고 그 후에 남성에게 주었으며,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여성 몫으로 그 가르침이 곧 가정의 가르침으로 해석되고 있다.

“병사는 전투적으로, 시인은 시적으로, 신학자는 경건하게 교육할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만은 인간적으로 교육할 것이다”는 장 파울의 말은 평범한 것 같지만 깊이 있는 인생을 거친 말이다. 또한 어머니는 우리들 영혼에 온화함을 부여하고 아버지는 빛을 준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은 되새겨 볼만하다.

김인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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