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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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 유니폼을 입으면

2009-04-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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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이 다음에 무엇이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흔히 유니폼을 입은 직종을 말한다. 그만큼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보기 좋기 때문이다.

집단이 클수록 유니폼은 광채를 내며 명예와 힘을 과시한다. 일반적으로 복장은 사회적인 역할, 개인의 취향, 현재의 상황 등을 추측할 수도 있지만 특히 유니폼은 한 눈에 그의 직능을 말한다.


동일한 디자인, 균일한 색깔, 같은 질의 옷감으로, 제작된 제복은, 입은 사람의 얼굴 나아가서는 그들의 정신까지 동등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점이 제복의 장점이고,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기관에서도 교복 착용 문제는 교사들의 토의사항이다. 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관심사가 된다. 한때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교복 착용에 대한 토의가 활발하였다. 찬성하는 편에서는 학생의 집단정신, 긍지, 품위, 검소한 생활태도… 등을 높이 외쳤다. 반대하는 편에서는 개성이 없다, 학생을 규격품으로 만든다, 학생의 의상 선택하는 눈을 무디게 한다… 등으로 소리를 높였다.

어느 잡지에 실린 사과 종류는 20가지가 넘었다. 다양한 색깔과 크기, 사람들이 베어 먹은 크고 작은 입 자국이 난 사과들까지 나와 있었으니 여기에 사과 맛까지 합하면 사과에 대한 이미지가 ‘빨간 사과’로 통일될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피부색을 소위 ‘살갗 색’ 한 가지로 정해버릴 수 없는 노릇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더욱 현저하게 나타난다. 가족끼리 혹은 학교에서 피크닉을 갈 때 ‘A로 가자’라고 통보하기보다는 ‘어디로 갈까’하는 것이 첫 물음이면 좋겠다. A, B, C 후보지가 나오면 각처의 장단점을 고려해서 좋은 곳으로 정하면 자연스럽다.

사람은 서로 다른 겉모습으로 일차적인 구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피상적이 아닌, 서로 다름의 진가는 사람의 ‘생각’에 있다. 삶에 희망을 주는 것도 새로운 ‘생각’이 끊임없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세상이 발전하는 것도 ‘생각’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그룹, 나라, 세계인의 다양한 생각은 인류를 다각적으로 향상시키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뚜렷한 자기의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젊다는 의미는 생각이 상록수처럼 젊다는 뜻이다.

유니폼을 발명한 인간은 지혜롭다. 그렇다고 사람다움의 진수에 유니폼을 입힐 수는 없다. 한 가지 유형의 인간사회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인간사회는 다양하기 때문에 비로소 꿈이 있다.


“무엇을 그릴까”라고 물을 때 내 친구, 바나나, 비행기, 공원, 우리 집, 강아지, 장난감 등등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소재를 그리겠다는 어린이들이 있을 때 건강한 교실이 된다. “오늘은 어린이의 마음을 그려보자”라고 하였을 때 다양한 모양, 크기, 다채로운 색깔이 나와야 자연스럽고 건전하다.

‘생각’이 유니폼을 입으면 생각하는 두뇌는 휴식상태가 된다. 유니폼을 입은 ‘생각 A’와 입지 않은 ‘생각 B’가 대화를 한다. “너는 힘들겠다. 나는 이렇게 편한데. 남이 입혀준 유니폼 덕택에” “아니야, 나는 매일 재미있게 지내. 내가 가진 생각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는 재미가 최고거든. 이게 사는 재밀 거야. 너도 큰 소리로 외쳐 봐. 유니폼을 벗겠다고.”

어린이들이 하는 말 중에서 필자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 바로 “I like to be myself”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한 긍 지와 자신감을 단적으로 표현 한다.

그들의 ‘생각’은 알록달록한 색깔, 다양한 모양, 질기거나 연한 성향 등 가지각색이다. 마치 그들의 생김새처럼. 이것이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는 이유다.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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