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어야 사는 비밀

2009-04-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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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은 미국인들에게 특별한 날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이 부활절은 다른 어떤 날보다도 가장 특별한 날이어야 하는데 과연 이 날의 진정한 의미가 얼마나 살아서 숨 쉬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예수님의 부활은 가장 심플하고 단호하게 신앙인이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를 표본으로 가르쳐 준 사건이다. 성경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바로 “죽어야 산다”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 상대를 제압하고 밀쳐내는데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세상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상대에게 어떤 상처를 주든 말든 상관이 없다.


내 이름 내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 겉으로는 인자한 웃음을 짓지만 속으로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다. 이런 세상을 보게 되면 소망과 꿈, 기대보다는 자꾸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 중 예상 외로 많은 숫자가 미래에 대한 꿈과 소망이 없다.

그리고 나아가 상당히 비관적이다. 예전 우리의 공통적이고 평범한 바람은 성실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과 좋은 배우자를 만나 아들 딸 잘 낳고 행복한 단꿈을 꾸는 것이었다.

그러나 삶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인해 많은 청소년들이 무조건 물질적인 성공으로만 치닫거나 아니면 비관적 자세, 즉 “공부 열심히 하면 뭐 하냐”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으면 뭐 하냐” “세상이 이렇게 무서워지는데…” 하는 냉소적 태도와 두려움을 갖고 있다. 가정에서 부부의 갈등과 이혼, 부모와 자녀간의 심각한 갈등, 이웃과의 넘지 못할 높은 벽, 이러한 것들은 바로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힘들게 만들고 그것으로 인해 내가 더 힘들어진 삶의 모습이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고 그것으로 인해 내가 죽어가는 모습이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으면,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위해 죽으면, 그리고 부모가 자녀를 위해 죽으면 되었을 문제들을 내가 살겠다고 그 원망과 불평의 손가락을 상대에게 겨누면서 서로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죽으면 산다”는 것이 너무 극단적이고 극약처방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무지라고 본다. 이 안에 완전한 평화가 있고 이 안에 사랑의 실체가 있고 이 안에 완성과 온전함이 있기 때문이다.

부활절에 교회는 위에서부터 죽는 연습과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이 그 모범을 가정에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의 비밀을 통해 살아나는 가정들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사회나 세상은 죽어야 사는 비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부활의 정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부활절엔 나부터 남편에 대해, 사랑하는 세 딸들에 대해, 그리고 내 이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십자가에 죽는 은혜를 통해 아름다운 부활의 기쁨을 누려보고 싶다.


이상숙/ 상담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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