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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칼럼/ 정체성의 힘

2009-04-11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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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붙들려간 조선 도공의 후손 심수관 옹이 초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 왔을 때의 일이다. 하루 종일 그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아들을 보자 말자 그의 작업실로 데리고 들어가, 물레위에 고령토 진흙 한 덩어리를 올려놓고는 진흙 한 가운데 바늘 하나를 꾹- 꽂았다.

그리고 물레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어린 아들에게 물었다. “이것을 보고 무엇을 느끼느냐?” “돌아가는 물레의 중심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바늘이 보입니다.” “그래 잘 보았다. 돌아가는 물레의 움직이지 않는 중심, 이것이 네가 추구해야 할 인생임을 잘 기억해라.”심수관 옹이 그 때는 어린 나이라 아버지의 말의 속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쉬지 말
고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하라“ 는 정도로만 알아들었다.그러나 자신이 백발의 노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때 아버지가 하신 말의 속뜻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비록 일본 땅에 와서 일본 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물레 중심에 꽂혀있는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조선 도공의 얼을 이어 받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세상의 물레는 현란하고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새에게 영역이 없듯이 국경과 민족의 개념이 희미해진 시대가 바로 오늘날의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바늘처럼 올바른 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왜냐하면 ‘정체성의 힘’이 곧 생존과 번영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계인구 중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비율은 0.2%에 불과하고 미국인구중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비율은 2.2%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노벨상 수상자중 22%가 이스라엘 사람이다. 경제학, 의학, 물리학, 화학으로 분야를 좁혀보면 그 비율은 40%로 확대된다. 말하자면 0.2%가 노벨상의 40%를 휩쓸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하버드대학을 위시한 아이비리그의 교수 중 25%가 이스라엘 사람이며 미국의 최고 부호 중 25%가 역시 그들이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두 말 할 필요 없다. 정체성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가 나라 없는 설움을 안고 살았지만 14대에 걸쳐서 ‘심수관 요’의 명성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도 정체성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2,500년 동안이나 나라 없는 디아스포라의 떠돌이 삶을 살면서도 어떤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견디어 낸 것과 어느 민족에게 지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게 된 것도 토라(Torah)와 탈무드에서 비롯된 확고한 신앙의 정체성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과 학교와 도서관을 아우르는 ‘시나고그’라는 특별한 공동체를 통하여 독특한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이 시나고그는 마을마다 형성되어 있어서 여기서 토라와 탈무드를 배우고 히브리어와 영어 뿐 아니라 프랑스어 라틴어 독일어 스페인어 까지 배우고 윤리적 삶을 배운다. 그래서 세계의 중심지 미국에는 150개국이 넘는 다민족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우수한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다. 그들의 강한 정체성이 번영과 부강을 가져왔다. ‘내가 누구냐?’ 는 정체성이 확립되어있지 않으면 정상에 도달 할 수가 없으며 세속적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데도 문제점을 노출하게 된다.

청렴과 순수성을 가장 강조했던 참여정부의 전임 대통령이 수십억의 돈을 받았다고 밝혀지는 바람에 그를 따르고 바라보던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지고 말았다. 만일 그가 청렴과 순수성을 강조하는 만큼 ‘정체성’에 대하여 생각한 바가 있었다면 이런 자가당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힘보다도 ‘정체성의 힘’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이다.


김창만 <온누리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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