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에 내놓고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고려청자나 분청사기 그리고 이조백자와 같은 명품 도자기의 명맥이 끊어지게 된 데에는 계승의 원리를 경시했던 선조들의 실수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의 우리나라 도공들은 자신이 죽으면 모든 도예의 비법도 함께 무덤으로 가져가 묻어 버렸다.
우리의 조상들은 도자기 굽는 일을 낫고 천한 직업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당대에 이루어놓은 도예의 삶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것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당대로 마감하는 것이 후손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우리나라엔 아직까지 도자기를 만드는 비법 중에 하나인 유약 제조기술 하나조차 변변히 계승되어진 확실한 문헌이나 매뉴얼이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보다 약 300년 이상이나 도자기 역사가 짧았던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은 한국의 도예기술을 탐내어 일으킨 7년 임진왜란 기간 동안에 조선 전역을 샅샅이 뒤져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도공이란 도공은 무조건 붙잡아갔는데, 이때에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의 수가 1,000명이 넘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그 때에 붙잡아간 조선의 도공들을 한 군데로 모여 살게 하였고, 명장 계승 제도를 만들어 놓고 명장의 대를 잇게 하였다. 이와 같은 계승정책을 통하여서 일본은 조선에서 훔쳐간 우수한 도자기 제조 기술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전략에 성공하게 된다. 그 결과로 일본은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그들이 오랫동안 꿈꾸던 도자기 선진국으로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이런 행동이 얼마나 얄밉고 배 아픈 일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를 다 나은 성장과 발전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명장제도가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 모른다. 일본 3대 도요중 하나인 심수관요의 심수관 옹은 임진왜란 직후인 1598년에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 심당길 옹의 14대 후손이다. 그가 일본에 붙잡혀 온 이 후로 14대에 걸쳐서 도공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그 비결이 흙, 물, 불, 유약과 가마를 다루는 도자기 제조의 일체 비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모두 후손들에게 전수하고 계승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날 일본에서 ‘심수관’하면 일본 최고의 도자기 가문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춘향가 같은 전통 판소리 하나도 후진 양성과 대를 잇는 비법 전수와 계승의 노력이 있어야만 그 명맥을 이어 나갈 수 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미래를 내다보는 역사의식은 과연 어떠한가? 우리 한국 사람들은 너무 생각이 좁고 옹졸하다고 느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린 너무 자기의 밥그릇만 생각하는 자기생존전략에만 눈이 어둡다. 전체의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 하나에만 집착하는 미시경제학적 병에 걸렸다. 도무지 남을 배려하고 키워 줄줄 모르고 계승의 원리를 모르고 살아간다. 좀 똑똑한 후배가 나타나면 청출어람의 고사가 자신의 현실이 될까봐 벌벌 떤다. 심지어는 식당의 주방장이 김치 담구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밤중에 혼자 부엌에 들어와 일을 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성이다.
얼마 전에 숭례문이 방화로 무너지고 난 후 중건 계획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숭례문을 중건하는 공사를 책임지고 진두지휘할 실력 있는 도편수가 몇 사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승의 원리를 깨닫지 못한 우리 선조들의 실책의 결과이다. 성경의 역사도 동일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여호수아 시대 이후 사사기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400년 동안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에 빠지고 말았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나? 신앙의 계승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앞에 나서는 사람은 많았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줄 진정한 계승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타날 미래의 선진국은 계승의 법칙에 충실한 민족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