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울증 시대

2009-03-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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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통계상으로 한 해에 자살하는 사람의 숫자가 약 1만2,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 달에 1,000명 정도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조금씩 더 늘어나는 추세에 있단다. 자살하는 원인이야 수천가지겠지만 결국에 죽음으로 모는 것은 그 수많은 이유가 만들어 낸 우울증이라고 한다.

사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사실을 자각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설마 내가?’ ‘뭐 이 정도 일로?’ ‘나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등등의 말로 우울증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에 병은 더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경우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 큰 아이와 두 살 터울인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 육아로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양가 부모님들이 다 한국에 계시기 때문에 아이를 키울 때 도움 받을 곳이 없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하고 정말 지지고 볶던 때였다.


게다가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적응하려고 애쓰던 때였고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든 때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인정하기 보다는 창피해 했었다.

어떻게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그림도 배워보고, 모임에도 나가보고, 학교에서 수업도 들었다. 그런 노력들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조금씩 커 나가자 한숨 돌리게 돼서인지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우울했던 내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정말 변화했던 시간들은 나중에 왔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지인 중에 상담을 전공한 분이 있었다. 그 분과 일대 일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중에 우울했고 다쳤고 고립되어 있던 마음들이 열리고 치료되는 경험을 했다. 그 동안 어떻게 내가 이런 말들을 다 담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했었고 그분은 들어주었다. 그렇다고 그 분이 내게 어떤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해 준 건 아니었다. 그냥 얘기하고 공감해주는 그 순간에 평화가 찾아왔다.

우울했던 한 시기를 지나고 내가 얻은 게 있다면 사람은 타인에 의한 공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좀 더 내가 일찍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공감해 줄 누군가를 만났다면 우울증도 좀 더 빨리 쉽게 극복했을 것이다. 우울증에 관한 통계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6월 달엔 자살자 수가 거의 40% 감소했다는 것이다. 월드컵을 보면서 정말 한 마음 한 뜻으로 소리 지르고 환호하던 그 때, 모두의 마음이 축구 하나로 공감되던 그 때만큼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었을 우울증이 치료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영국 다이애나비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영국 전체가 울음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었던 그 때에도 자살자 수가 감소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젊은 여배우와 가수 한 분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은 정말 본인들 말고는 알 수가 없겠지만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외로웠던 영혼들을 공감해 줄 사람이 옆에 없었다는 게 아쉽다. 한자로 사람 인(人)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기대고 의지하며 공감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김현희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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