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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칼럼/ “세렌디피티와 창의성”

2009-03-21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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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serendipity)가 창의성의 중요한 원천과 모티베이션이 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세렌디피티”란 우연이나 실수가 창의성을 띤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 그리고 삶의 질적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때 쓰는 말이다.

먼저 모세에게 나타난 세렌디피티를 보자(출애굽기 2-3장). 모세는 바로 왕의 이스라엘 인구 말살정책 속에서 태어난 비운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때 갓 태어난 애기 모세를 담아 떠내려 보낸 갈대상자가 우연히 바로 왕의 공주의 눈에 띠게 됨으로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나중에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이게 모세에게 나타난 첫 번째 세렌디피티이다. 두 번째 세렌디피티는 동족을 보호하려다가 애굽 사람을 우연히 죽이게 된 모세가 바로 왕에게 쫓겨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동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일어났다. 그가 어느 날 한가롭게 양을 치고 있다가 우연히 가시떨기 나무에서 불이 붙는 신비한 광경을 보게 되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게 된다. 이 우연한 사건들이 모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세렌디피티가 된 것이다.

플레밍 박사가 체험한 페니실린 발명의 세렌디피티도 우리를 흥분케 한다. 하루는 플레밍 박사가 깜박 잊어버리고 실험실 창문을 열어둔 채로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밖의 공기 속에 묻어 들어온 곰팡이 균이 마침 배양 중이던 포도상구균에 착상하여 잡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페니실린은 이렇게 실수와 우연을 통하여 발명되었다. 이것 말고도 세렌디피티의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우연히 농장에 놀러 갔다가 젖소의 우유를 짜는 여인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우두접종을 만든 것이라든지, 아이삭 뉴톤이 우연히 사과나무 밑에 누어 있다가 머리위로 떨어지는 사과하나 때문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 것 등이다.


또 있다. 그 유명한 “유레카”의 스토리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왕관에 함유되어 있는 순금의 무게를 계산해 오라는 왕의 명령을 받고 고민하다가 하루는 목욕탕에 들어가게 되었다.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 앉을 때 넘치는 물을 우연히 바라보다가 그는 발가벗은 채로 밖으로 뛰어 나오
면서 “유레카!”라고 외친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 모든 엄청난 업적들이 다 세렌디피티가 낳은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세렌디피티가 낳은 위대한 창의성들이 정말 우연이나 실수를 통해서 단순하게 거저 얻어지는 것일까? 나의 대답은 “아니다” 이다. 왜 그런가? 단지 우연과 실수를 통해 쉽게 창의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복권을 뽑아 부자가 되겠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가는 도박인생과 같다. 이런 사람은 세렌디피티의 축복과 기적을 기대하지 말라.

세렌디피티의 축복과 기적을 바라는 이 시대의 꿈꾸는 자들과 비전너리(visionary)들은 들으라. 위대한 창의성은 우연과 실수를 통해서 세렌디피티를 통하여 올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어떤 작은 우연이나 실수를 하나님이 내리신 경의로움과 놀람의 지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평범에 머물러 ‘뻔하고 흔한 이야기’로 치부하며 흘려버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렌디피티의 축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당신이 진정 세렌디피티의 축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우연이나 실수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영감이나 느낌 그리고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도록 항상 비범하게 깨어있어야 한다. 위대한 성공은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은 사람의 몫이 아니다. 위대한 성공은 수없는 실수와 우연의 반복이라는 진흙 속에서 빛나는 보석을 찾아내려고 애쓰며 깨어있는 탐험가의 것이다.
바로 거기에 세렌디피티의 축복과 기적이 있다. 다시 말한다. 당신의 인생을 탐험가의 정신으로 살아가라. 이처럼 세렌디피티의 특징은 우연과 실수를 통하여 새롭고 놀라운 일들이 전개되어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는 데 그 중요한 의미가 있다.

김창만 온누리순복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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