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도박 도시의 몰락

2009-03-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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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나빠지니까 우선 카지노들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미 동부 5개 주에 카지노 25곳이 있는데 그중 11개가 뉴저지 주의 애틀랜틱시티에 있다. 가히 도박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애틀랜틱시티 11개 카지노 중 3분의 1이 곧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한다.

사실 카지노는 주 정부의 세입이 짭짤할 뿐만 아니라 고용시장이나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을 주어 왔다. 그러나 나라의 긴 장내를 생각하면 도박을 권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정신의 하나가 근면이다. 요행이나 대박을 바라지 말고 땀 흘려 일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건실하고 부지런한 삶이 미국의 개척조상들이 심은 정신적 뿌리이다.

한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주색잡기에 빠지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것들은 가정을 무너지게 하고 당사자를 부끄럽게 하는 3박자이다. 한국인은 수치문화 속에 살아왔기 때문에 부끄럼을 당한다는 것은 잠간 낯이 붉어지는 어색함이 아니라 가문이나 개인에게나 치명적인 손상이었다.


무엇이나 ‘지나치면 아니 감보다 못하다.’ 도박은 심심풀이로 하는 화투놀이부터 카지노의 수많은 도박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일단 빠지면 재미에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사람은 카지노에 가지만 200달러만 잃으면 즉시 일어선다고 꽤 결단력이 있는 것처럼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요행이나 벼락부자나 공돈을 바라는 마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땀으로 얻은 소득만이 행복과 연결된다.

돈이란 종으로 부리면 좋은 것이지만 상전으로 모시면 해로운 것이다. 먹을 것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식욕은 살 수 없다. 약은 살 수 있으나 건강은 못산다. 좋은 침대는 살 수 있으나 편안한 잠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쾌락도 혹시 구입할 수 있겠으나 기쁨을 살 수는 없다.

돈은 물건과의 교환권이지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이 얼마큼 뜻있고 행복한 생애를 보냈는지 알려면 그의 저금통장을 볼 것이 아니라 그의 수표장을 보아야 한다. 즉 얼마큼 가졌었느냐 하는 것 보다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평가되는 것이다.

그리스어로 관리자를 ‘오이코노모스’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영어의 이코노미(경제)가 나왔다. 경제는 관리자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돈이란 돌리면 살아나고 묶어두면 썩는다.

영국의 사치스럽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많은 옷장들 속에 1만 벌의 옷을 남겨 두고 죽었다. 그녀의 통치 시절 대영제국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여왕은 “시간을 살 수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내겠다.”라고 말하며 빠른 세월을 한탄하였다.

부부 갈등 중 약 절반은 돈 때문에 생긴다고 어떤 전문 상담자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교회 목회의 특징이 ‘심방’이라는 것인데 집들을 찾아가 보면 뜻 밖에 경제형편이 좋은데 찬바람이 불고 살림은 넉넉하지 못하나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를 느끼는 곳을 많이 보았다. 행복이 돈과 맞물려 있지는 않다.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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