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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칼럼/ “아일랜드와 성 패트릭”

2009-03-14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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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선교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는 명제는 역사 자체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바울의 선교 방향이 동행하지 않고 서행함으로써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구 기독교 문명이 세계 역사를 주도하게 된 것처럼 기독교 선교가 들어가는 곳마다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기독교의 선교는 세계 역사의 흐름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다. 한 국가와 민족의 역사도 바꾸어 놓았다. 가장 모범적인 예는 아일랜드이고 그 당사자는 아일랜드의 선교의 아버지인 성 패트릭(St. Patrick)이다. 성 패트릭은 5세기 초 그의 나이 44세가 되던 해에 그의 조국 영국을 떠나 아일랜드에 들어와 26년 동안 선교 사역을 했다. 문자 그대로 그의 평생을 아일랜드의 선교를 위해 아낌없이 바친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700개의 교회와 수많은 신학교를 세워 1,000여 명의 목회자를 배출하였다. 또한 마을마다 학교를 세워 무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고아원을 세워 약한 자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았으며 노예들에게 자유를 허락 하고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화해와 치유의 선교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파장과 결과는 엄청났다. 전 국민의 1/3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우상 숭배와 야만성과 무지함으로 충일했던 바이킹 해적의 섬이 지식과 지혜와 문화와 문명을 아는 우량 민족이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서로 단결을 모르고 배타적으로 대립되어 왔던 150여 개에 이르는 종족들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기적을 가져왔고, 그 결과로 영국을 위시한 유럽의 열강과 어깨를 겨루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3월 17일은 “성 패트릭 데이”이다. 그가 죽은 지 1,549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성 패트릭”의 이름은 아일랜드 국민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그래서 이 날이 오면 세계 모든 도시마다 초록국장 “Shamrock을 가슴에 달고 온통 초록 색깔로 단장한 아일랜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행진하며 성 패트릭의 화해와 치유의 선교 정신을 드높이고 기린다. 그러면 영국인이었던 패트릭이 어떤 계기로 해서 아일랜드의 선교사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패트릭은 주후 385년경 영국 동북부 지역에서 켈트족의 후예로 태어났다. 그의 나이 16세가 될 때까지는 지독한 말썽꾸러기와 문제아로 성장하였다. 그런데 그가 16세가 되던 해에 그의 생애에 큰 위기가 닥쳐왔다. 당시 바이킹 야만족이었던 아일랜드 해적이 북 영국을 침략하여 많은 사람과 재물을 노략할 때에 어린 소년 패트릭도 그 무리 가운데 섞여 끌려가게 된 것이다. 해적의 노예가 된 그는 6년 동안 아일랜드의 거칠고 추운 들판에서 사람과 단절된 고독한 목동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원수의 나라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화해와 치유의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아일랜드와 패트릭은 이렇게 해서 인연이 맺어졌다. 말하자면 악연이 축복이 된 셈이다.

춘 3월이다. 겨우내 차갑게 얼어붙었던 동토의 대지가 녹으면서 여기저기서 초록의 새 생명이 돋아 나온다. 겨우내내 삭막했던 대지가 초록으로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해적의 나라 아일랜드를 화해와 치유로 덮어나갔던 패트릭의 선교정신이 새삼 생각난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다. 멀었던 누구와도 화해하고 용서를 나누는 사람이 되라는 예수의 말씀이 가슴 속으로 뜨겁게 밀려온다.


김창만 목사<온누리 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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