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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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2009-02-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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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 작가 요코 카미오의 ‘꽃보다 남자’가 한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중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한 번이라도 들어간 사람들은 누구나 알듯이 현재 한국은 ‘꽃보다 남자’ 신드롬이 불고 있다. 원작이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5,900만권 이상이 팔렸을 뿐만 아니라 시청률에서도 공히 기록적인 수치를 기록했다는 이야기가 현해탄을 넘을 무렵, 우리나라에서도 제작이 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대만과 일본에서 드라마와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제작이 되어서 우리나라는 드라마로만 세 번째로 리메이크 하는 셈이다.

내용은 부자아이들만 다니는 고등학교에 서민 여자아이가 입학한다. 이 여학생이 일명 F4(Flower 4= 꽃미남 4인방)로 불리는 재벌가 도련님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다가 그중에 리더 격인 재벌후계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구준표란 이름의 재벌가 도련님은 잘생긴 외모와 전 세계 30위 권 안에 드는 기업의 후계자이다 보니 당연히 서민 여학생과의 연애전선에 온갖 환난고초를 겪는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다.

막상 이야기의 뼈대만 추려보면 그 동안 수없이 리메이크 되었던 신데렐라의 이야기와 난폭하고 유아독존인 남자 주인공이 서민 아가씨를 만나 인간적으로 성숙해 가는 ‘제인 에어’나 ‘오만과 편견’ 과의 결합을 시도한 변종물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오늘 날까지도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여학생에서부터 결혼을 앞둔 딸을 가진 아줌마까지 모두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들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드라마 속에 재벌가 후계자는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에 가장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수퍼 히어로의 변형이다. 하늘을 날아다니지 못해도 빌딩을 두 손으로 기어오르지 못해도 이 도련님들은 자가용 비행기로 원하면 전 세계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고, 기어오를 만한 높은 빌딩들을 몇 십 채식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공할 만한 물질의 힘으로 원하는 모든 걸 다 소유할 수 있는 이들이야 말로 이 시대에 현존하는 수퍼 히어로들인 것이다.

거기다가 이 왕자님들은 타인에게는 괴팍하지만 사랑하는 서민아가씨한테는 순정이 넘쳐나니 왕자님과 사는 왕국에는 경쟁자도 없고 입성하는 순간 ‘에버 애프터(ever after)’가 보장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세계 경제가 침체의 길을 걷고 있고 개개인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고 있는 때에 돈이라는 수퍼 파워를 가진 왕자님들의 가치가 연일 상종가를 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꽃보다 남자’가 대히트하는 시대가 조금은 안타깝다. 모두가 잘난 왕자님한테 간택받기를 꿈꾸는 동안 우리가 소홀히 하는 한 송이 꽃 때문이다.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울고 무서리가 내리는 수고를 거쳐야만 피어나는 한 송이 국화꽃을, 가슴에 담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들이 빛을 잃기 때문이다. 제목이 알려 주듯이 ‘꽃보다 남자’가 낫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꽃은 화무십일홍이니 꽃을 피우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꽃만큼 잘생기고 잘난 왕자님 만나는 게 옳다는 무언의 주장 같기 때문이다. 매주 월요일이 되면 ‘꽃보다 남자’를 맹하게 시청하다가도 불쑥불쑥 불편한 느낌이 드는 건 그렇게 내버려둔 내 한 송이 꽃의 시듦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현희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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