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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무례한 아이

2009-02-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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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임상심리치료사>


필자가 일하는 클리닉 대기실에는 늘 여러 인종의 아동과 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대기실에서의 부모-자녀 관계를 관찰하는 것이 치료실 안에서의 진단보다 더 정확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아동이 부모의 말을 경청하는지, 다른 아이들의 장난감을 빼앗아 가는지, 여기 저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지의 여부는 중요한 진단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문제 성향을 가진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점 중의 하나가 무례하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어른을 전혀 배려하지 못한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이 늘 우선시된다. 타인의 행복과 이익은 늘 뒷전이기 마련이다. 종종 분노발작을 보이고 생떼를 쓴다.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변명으로 일관한다.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할 줄 모른다. 궁극적으로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성향을 보인다.


특히, 반항장애, 행동장애,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 간헐성 폭발성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주로 이런 증상을 가지고 있다. 임상적으로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충동조절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아이들을 가리켜 무례한 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례하다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예의가 없는 아이라 할지라도 공부나 운동과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아이에게 예의가 부족하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우선, 학교에서 또래들과 어울릴 수 없다.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아이를 받아줄 리 만무하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는 학교 부적응아 혹은 문제아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아이들은 낮은 행복감과 자존감을 갖게 된다.

특히 미국의 교육적 가치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원 교육에 이르기까지 늘 팀웍이 강조된다. 예의가 없는 아이는 교육환경에서도 적응하기 어렵다. 이 아이가 성장해서 결혼을 하게 되면 무례한 남편, 무례한 가장이 된다. 직업적으로는 무례한 의사, 변호사, 회계사, 금융 분석가가 된다.

사회 전체에 무례한 사람이 판을 친다고 가정해보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지하철에서 서로 발을 밟고 고성이 오갈 것이다. 도로에는 얌체 운전자들이 득실거릴 것이다. 공공시설에서는 잡지가 찢어져 있고 의자에는 낙서가 되어있을 것이다. 병원에서는 큰 소리로 전화하는 사람들로 의사의 진료가 방해를 받을 것이다. 식당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소란을 피우고 부모들은 휴지로 코를 풀어서 반찬 그릇에 던져 놓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예의와 존중보다는 경쟁과 성장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에서 예의를 지키는 것, 즉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남과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법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똑똑하고 뛰어난 개인이라 할지라도 예의없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개인, 가정, 사회 속에서 부적응자 혹은 불필요란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아이들에게서 공부와 성적만을 강조하고 예의를 가르치지 않는 다는 것은 갓난아이에게 칼과 총을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나이는 먹었지만 아직 성숙되지 못한 ‘성인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게 아닌 가 싶다. 다행인 점은 요즘 들어 아이의 품성이 중요하며, 어렸을 때부터 인성교육과 예의를 가르쳐야 한다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무례한 아이들, 나아가 무례한 성인들을 더 이상 양산하지 않으려면 가정교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아이들은 커서도 예의를 지킬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부모가 예의를 지키는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에게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가르치는 것을 자녀양육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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