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토벤 바이러스’의 교훈

2009-01-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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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를 보니 한국에선 유례없는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오디션이 활발하다고 한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과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수편의 오페라에도 출연한 바 있으며 현재는 가주 공인 법정통역인이다. 말하자면 드라마 속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는 반대 입장이다.

오페라나 콘서트에서는 프리마 돈나 혹은 솔리스트였다. 조명과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 위치였다. 최선을 다해 나를 표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리허설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객석에서 듣는 것과는 달리 고도의 ‘기 싸움’인 것이다. 리허설 첫 날은 동료들의 성격, 음악적 성향, 극장의 음향, 지휘자, 합창단 등 많은 것을 재빨리 분석해야 하는데 웬만한 전략가가 전쟁 준비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그 기간은 정말이지 서로의 위치에서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각오로 얼굴 붉히며 투쟁한다. 그런 거칠고도 힘든 과정 후에 서게 되는 무대에서는 마치 내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리허설 때 있었던 일들은 온데간데없고 오케스트라와 합창, 심지어는 지휘자까지 훌륭한 공연을 위해 서로를 배려하며 하모니를 맞추려 한다. 그런 매력이 있기에 그때는 음악을 하지 않는 나 자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24시간 음악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지금의 나는 타인의 입과 귀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자신은 존재하지 않다시피 하다. 쉽게 말하자면 무대에서 내려와 사람들 사이로 온 것이다.

사실 법정이나 법정 밖에서 통역을 하며 나는 세상이 얼마나 넓으며 내가 살았던 세계가 얼마나 편협했는지 실감하게 됐다. 통역의 본질이란 것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의사를 ‘가감 없이’(word for word) 전달해야 하는 것이므로 그 시간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통역 역시 시간예술인 음악과 마찬가지로 그 순간 통역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많은 결정이 이루어진다.

통역사의 입을 거쳐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로 여러 방향의 다른 결정이 내려질 수 있고 어떤 때는 그로 인해 손실이 있을 수도 있으며 그와는 반대로 이익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통역을 하는 순간에는 내 몸의 모든 세포가 긴장하는데 그 중 뇌세포의 회전은 최고의 속력으로 돌아가는 발전기의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하게 달라 보이는 두 가지 일을 하며 내 나름대로 얻은 교훈이 있다. 프리마 돈나든 통역사든 동료들과의 화합을 이루며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연주장과 법정이라는 두 개의 완벽하게 다른 세트지만 지휘자와 판사는 청중들과 법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서비스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특히 통역은 언제 어떤 토픽이 튀어 나올지 모르기에 무한대의 지식을 끝없이 섭렵해야 한다.

주인공도 돼 보고 다른 이를 돕는 입장에도 서 보면서 깨우친 것은 ‘입장 바꿔보기’의 소중함이다. 배우자들끼리, 연인들끼리, 상사와 부하 직원,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가 서로의 위치를 바꾸어 생각하고 행동해 볼 수 있다면 자신들의 삶이 풍요로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런 태도를 자녀들 교육에 반영해 보면 그들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해오면서 배우는 데는 끝이 없음을 절감한다. 항상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는데 거리낌이 없어진다면 삶은 한결 풍요로워 지지 않을까 싶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전희영
성악가·법정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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