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새해 아침이었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하늘은 구름으로 가려져 별빛이 안 보였다. 그래도 남편은 해 뜨는 것을 보러 가자며 서둘렀다. 준비를 하고 6시에 집을 나서니 부슬부슬 오던 비가 억수로 쏟아 부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무슨 해가 뜰 것인가” 하고 투덜거려도 남편은 아랑곳 하지 않고 흥얼거리면서 운전을 한다. 정월 초하루인데 기분 상하게 할 게 무언가.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목적지인 샌드 비치에 도착하니 빗속에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바다를 향해 해 뜨는 곳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우리도 바다를 향하여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해 뜨는 쪽을 바라보았다.
샌드 비치에서 우산을 쓰고 서있는 사람들은 1백 명이 넘어 보였다. 우산 쓴 뒷모습들을 보면서 한해 소원이 얼마나 간절하면 이 빗속에 우산을 쓰고 검은 바다와 검은 하늘을 바라볼까 생각했다.
나도 네 아이들을 위해 기도 하고 남편의 건강을 위해 기도 하고, 형제자매, 이웃과 친지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동쪽은 여전히 캄캄했다. 하늘에는 구름이 검게 덮여 있다. 비는 계속 오고, 동쪽에서는 구름이 2009년 해 뜨는 것을 거부하는지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10분 정도 기도를 하고 나니 캄캄하던 동쪽 하늘의 구름이 발갛게 물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빨간 빛이 구름 속 사이로 비쳤다. 부끄러워 가만 가만 창문 밑으로 와서 문을 두드리는 소년 같았다. 붉은 빛이 조금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홍당무가 된 내 유년의 친구 송하의 얼굴이다. 내가 쳐다보면, 부끄러워 얼굴이 발개지던 얼굴이다.
차의 창문을 열었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비가 차안으로 들어 왔다. 우산을 들고 동쪽을 바라보고 서있는 사람들, 가슴에 담은 절박한 소원을 빌었으리라. 지금 우리의 상황은 비오는 날씨 같지만 저렇게 찬란하게 해가 뜰 것이라는 예고 같았다.
현재의 고통도, 지난날 슬픔도 상관없이 해는 눈부시게 뜨고 있었다. 어제 것은 뒤로 넘기라고 , 찬란한 태양을 향해 앞으로 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밖에서는 비가 주룩 주룩 쏟아지는데 동쪽에서는 밝은 빛을 준비하고 있었고 황금덩이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밝은 빛을 보니 눈물이 났다. 태양아, 솟아올라라. 태양아 빛을 발하라. 2009년이 쏘아 올린 저 태양처럼 온 누리가 밝아라. 말없이 소리쳤다.
남편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잘 왔지. 태양이 저렇게 뜨고 있잖아” 말한다.
그래, 이 긴 터널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는 사이 빛은 저렇게 준비하여 2009년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 태양이 완전히 떠오르고 나서 차를 움직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지개가 이 산과 저 산을 걸쳐 둥글게 걸려 있었다.
찬란한 태양은 빗속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동안 태양은 내 등을 밀고 있었다. 태양아, 모든 사람 마음속에 떠올라라. 한 끼의 식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도, 전쟁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에게도, 경기 침체로 인해 불안한 사람들에게도.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태양을 쏘아 올려라.
김 사비나
하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