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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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수상- 기축년, 소해의 단상

2009-01-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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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소의 해가 밝았다. 올해는 금융 쓰나미 등 지난해의 다사다난했던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행복, 축복의 해가 되었으면 한다.

66억의 세계 인구가 같은 지구 위에 살지만 새해를 맞는 각자의 희망은 각기 다를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가자지구 분쟁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은 일촉즉발의 국제분쟁으로 이어질 조짐이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역사상 지구촌에 전쟁이 없는 날이 얼마나 될 것인가! 전쟁 없이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해의 상충과 욕망, 민족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 이어져 온 인간의 역사는 바로 전쟁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민족에게도 뼈아픈 전쟁의 상흔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불과 3년 동안의 전쟁이었지만 그 아픔의 한이 치유되지 못한 채로 남았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진 지 59년,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과 그리움이 짓밟혀진 그들의 슬픔과 고뇌를 어찌 가볍게 지나칠 것인가! 이성에 의한 당위적 도덕보다는 비이성적 요인인 욕망과 이해타산에 지배되는 약육강식의 현실을 개탄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의 숙명적인 안타까운 슬픔이다.

다른 한편 2008년 9월 붕괴되기 시작한 월가의 금융 쓰나미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이성적 해결책은 어려워지고 “경제, 돈”이라는 구호만 높이 휘날린다. 아무도 이 거대한 신자본주의의 결함을 치유하지 못하고 말만, 이론만 무성하다. 세계는 돈으로 환산되는 물질적 상품화로 전락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도 경제 올인을 시작하고 실업자 구제를 통한 실물경제회생을 위해 4대강 운하건설의 토목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한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왔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전에, 신문을 도배한 경제문제는 우리를 억누르는 척박한 현실, 우리가 넘어야할 현실이다. 물이 문득 솟구쳐 사물이 생겨났다가 물이 흐르면서 사물이 순간에 아득하게 사라져 버리듯이, 생이 지나가는 것도 그 빠르기가 문틈으로 흰말이 달려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빠르다는 장자의 말이 피부로 느껴지는 우리세대의 요즈음이다.

2008년은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주식시장의 곤두박질로 생계수단이 막히고, 실직으로 집을 잃고 홈리스가 된 사람, 기아에 허덕이는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 또한 지구 온난화의 어려운 문제 등 복잡한 삶의 질곡 속에서 우리는 2009년 새해를 맞았다.

인생은 일회성이어서 하루에 두 번 새벽이 없고, 한번 가버린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 하루는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라는 각오로 새해를 맞이한다면 여생을 후회의 여한에서 조금은 벗어나지 않을까!

‘희망의 원리’저자인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인간에게서 욕망의 활동이 멈추어 버린다면 시체 외에 무엇이 되겠는가! 인간은 언제나 현존을 초월해서 보다 낳은 미래를 지향하는 존재”라고 했다. 삶은 다양한 얼굴을 가졌다. 회한과 괴로움에 반해서 희망과 기쁨이 상존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향한 욕망의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어린 시절, 새해 아침에 머리맡에 놓여있을 설빔 생각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눈썹이 희어질까봐 잠을 쫓던 일, 어머님이 정성들여 만드셨던 모본단 치마에 색동저고리, 집안 어른들께 세배 다니던 일, 돌아보면 즐거운 추억만 메모리 셀에 잠재되었다. 그 시절은 지금보다 그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웠던가? 그렇지만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정의 평화와 아름다운 전통과 정서를 지키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축년 새해다. 소의 해다. 소는 반추를 한다. 우리도 지나간 일들을 반추하며 지금 처한 상황에서 ‘담대한 희망’을 가져보자.

김인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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