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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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주, 감 그리고 바흐

2009-01-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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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1월1일 아침에 몹시 심한 두통과 욕지기 때문에 깨어났다. 새해 첫날 아침의 숙취라니. 이로써 나는 3번째 숙취 경력을 쌓게 되었다.

이번 숙취는 철학교수(철학교수들을 조심하라!)가 초대한 섣달그믐 파티 때문이었다. 그녀의 집 전체는 ‘죄의 제단’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중엔 ‘흡연’ ‘키스’ ‘초컬릿’ 그리고 ‘알콜’의 ‘제단’도 있었다. 특히 ‘술의 제단’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술 종류가 많았다. 보드카, 진, 럼, 데킬라, 4종류의 위스키와 무지개처럼 밝은 수많은 종류의 단 술들.


그녀는 2개의 바텐더 책을 펼쳐 놓고 보면서 술들을 섞어 주었는데 그 중엔 ‘오르가즘의 외침’ 등 웃기거나 음흉한 이름의 술들도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던 난 그녀의 멋진 화학실험 결과들을 조금씩 수없이 마셔봤다.

물론 그녀는 술꾼마다 집에 데려다 줄 정신 말짱한 사람이 있는 지를 확인한 후에 술을 내주었다. 나중엔 그냥 주고 말았지만. 파티가 막판에 이르면서 그녀와 난 브라운 대학의 한인 철학자 김재권 교수에 대한 얘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는 ‘정신(마음)’에 관한 철학으로 대단히 유명한 교수다(1950년도에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 정착했다). 철학에 관심 많은 전산과 교수들도 흥미를 갖고 읽는 그의 책은 읽기가 아주 어렵고 딱딱하다.

술에 취했기 때문이었을까? 그 뻣뻣한 소재는 우리의 대화 속에서 아주 부드러웠다. 그에 관해 논문을 썼다는 그녀도 그에 대해 그렇게 부드럽게 얘기해 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술 문화에 그다지 민감한 편은 아니다. 부모님이 술을 마시지 않았고 나 역시 그랬으니까. 숙취의 첫 경험은 1980년대의 한 섣달 그믐날로 학생 시절 혼자 아파트에 살 때였다. 수퍼마켓에서 싸구려 샤도네를 한 병 사서 다 마셨었다. 그 경험은 하도 지겨워서, 지금도 누가 프랑스 산 고급 화이트 버건디 (화이트 버건디는 샤도네 포도로 만들어졌다)를 권하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내 친구들은 내가 술에 취해본 적이 많지 않다면 놀란다. “넌 한국에서도 살았었잖아! 일본에도 갔었잖아! 거기 문화에선 술을 뺄 수가 없다는데”

물론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외국인이었던 덕분에 권하는 술을 공손히 거절하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한국 술에 대한 내 입맛은 종류에 따라 차이가 많았다. 소주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맥주는 그저 괜찮은 정도였다. 막걸리는 입에 맞았다. 그리고 동동주는 상당히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건 내 생애 두 번 째 숙취의 원인이기도 했다.


멋진 자기 그릇에 담긴 하얀 술과 바가지. 넓은 대접에 그 차가운 술을 부어 입에 대는 맛이란! 한 친구가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진짜 홍어회 맛을 소개하던 날이었다. 홍어회의 암모니아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동동주를 계속 마셔댔다.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마루에서 일어설 때 난 확실히 비틀거리고 있었다(마루에서 오랫동안 가부좌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서양인들에겐 술이 아주 훌륭한 근육이완제가 되어 버티기가 더 쉽다는 말도 이미 들은 터였다). 그곳을 나온 우리는 찻집으로 가 좋은 차를 오랫동안 마셨다. 그랬는데도 나는 지하철을 타러 갈 때도 비틀거렸다. 그 날 밤 지하철 5호선엔 술 취한 승객이 결코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음날은 휴일이 아니어서 아침 일찍 일을 가기 위해 일어나야 했다. 숙취의 경험이 많지 않은 터라 나는 지금도 그 아침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때는 가을이었다. 좁은 골목골목의 작은 가게들을 지나면서 차곡차곡 쌓인 감들을 보던 기억이 난다(한국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게의 과일들도 바뀌던 것이 참 신기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감 전에는 배였고, 그 전에는 참외였다).

그리고 그 아침의 소리도 생생하다. 우리 아파트 2층엔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이 있었다. 웬일인지 그 아침에 모두 바흐의 미뉴엣을 연습하는 게 아닌가. 바흐의 ‘애나 맥다레나 책’의 그 유명한 곡. 4개의 창문에서 똑 같은 곡이 울렸나왔다. 각기 다른 스피드로 겹쳐져서 흘러나오는 그 피아노 소리는 마치 20세기의 실험곡 같았다. 아, 그 소리는 내 두통을 더욱 견딜 수 없게 했다.

그런데도 난 오늘 이날까지 동동주를 사랑한다. 감, 바흐 그리고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생생하게 기억나게 할지라도.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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