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화와 삶- 최후의 보루

2008-12-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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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의 어둠이 깊디깊은 공간의 한 가운데 예수의 상<사진>이 있고 그 아래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보인다.

사진작가 가브리엘 박이 이 사진을 찍은 날 그의 호주머니엔 3달러가 있었고 그는 뉴욕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는 햄버거를 하나 사 먹을까, 지하철을 탈까 생각하다가 지하철을 탔고 지하철의 종점을 나와 걷다가 클로이스터라는 작은 뮤지엄을 발견하였다. 석양빛이 창문에 새어 들어 오는 시간 그의 카메라에 포착된 예수상은 가장 절망적이고 깊은 어둠, 그리고 우리는 홀로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부정할 수 없는 희망을 보여준다.

이 사진이 팔린 적은 없는데 어느 화랑에 1년쯤 두었다가 팔리지 않는 굴욕(?)과 함께 들고 나온 적이 있고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의 영어 과외비 대신에 그 사진을 들고 간 적이 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친구에게 선물 했는데 영성이 깊은 친구는 이 사진 속의 예수님을 남아 있는 삶의 ‘최후의 보루’로 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사진 한장이 누군가에게 ‘최후의 보루’의 이미지가 되어 벽에 걸려 있다는 사실에 사진작가로 살아가며 느끼는 모든 고난이 씻기는 듯 ‘살맛이 난다’고 했다.

흰 눈 속에 서 있는 대나무 사진을 즐겨 찍는 그는 오늘도 눈발 속 어느 대숲을 걷고 있는 지도 모른다. 현실이 가장 추울 때 가장 아름다운, 절창에 가까운 사진이 나온다며 그는 웃었다. “빛과 소금이 되고 싶어” - 그가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마음의 겨울을 지내야지 하는 생각의 근거는 이 겨울이 생에 단 한 번 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겨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불안의 겨울…친구는 우리가 모두 조금씩 더 겸허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늘 다른 이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살아와야 했던 화가의 삶 중에 늘 타자들이 내 삶의 최후의 보루였었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누군가의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삶에 함께하는 고통을 사랑한다는 것일 것이다.

신의 사랑은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가운데 있다고 믿는 나는 묵묵히 이 겨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침묵의 기도를 듣는다.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시간, 라디오에서는 니나 시몬의 부드럽고 강렬히 떨리는 크리스 마스 캐롤이 나왔다. 인간의 목소리…삶의 모든 역사를 안고 그 역사를 흐르는 가장 따뜻한 가슴의 소리를 들려주는 이 인간이 목소리는 또다시 나의 모든 고뇌를 한 순간에 날려 버린다. 그 다음에 들은 것은 멕시칸의 격정적이고 깊은 크리스마스 송이었다. 가사를 번역해 주는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며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눈물은 은총이고 축복이다.

“난 저 별과 달과 태양과 하늘에서 온 게 아니야. 난 너에게 저 별빛 가득한 하늘을 다 주었어. 너에겐 그 무엇 하나도 없으니까”


난 느낄 수 있다. 우리들의 예지와 사랑으로, 절실한 간구와 기도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함께 우리가 우리의 삶과 문명을 창조 생성해 나갈 것을.

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린 모두 광야에 서 있다. 새벽은 왔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겨울바람 속에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분다… 살려고 애써야한다”고 시인 발레리는 노래했다.

물안개가 짙게 내리는 겨울 밤, 요즘은 시가 더욱 절실히 읽힌다.

“주여 당신은 사람들 가운데로 나를 부르셨습니다. 자,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는 괴로워하고 사랑하나이다. 나는 당신이 주신 목소리로 말했고, 당신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르쳐주시고 또 그들이 내게 전해 주신 말로 글을 썼습니다. 나는 지금 장난꾸러기들의 조롱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는,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나는 가겠나이다.

삼종(三鍾)의 종소리가 울립니다” - 프랑시스 잠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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