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해 유럽 못나간 유로2008 수퍼스타 아르샤빈
2008-12-15 (월) 12:00:00
그는 위대한 다리를 가졌다.
정말 위대한 다리를 가졌던 그라운드의 마술사 지네딘 지단(전 프랑스대표)은 올해 여름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유로2008 축구대회 때 러시아의 안드레이 아르샤빈을 이렇게 칭찬했다. 지단뿐 아니었다. 아르샤빈의 스타탄생을 목도한 거의 모두가 아르샤빈 칭찬릴레이에 가세했다.
아르샤빈은 유로2008이 배출한 별중의 별이었다. 번개처럼 빠른 발,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동물적인 패싱감각과 득점능력. 세계축구계에서 종이 호랑이, 잠자는 거인 취급을 당했던 러시아는 아르샤빈의 종횡무진 활약에 힘입어 4강에 올랐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4강 보증수표임을 다시금 입증했다. 북구의 강호 스웨덴과 조별리그까지만 해도 우승후보 0순위로 꼽혔던 네덜란드가 히딩크의 러시아, 아르샤빈의 러시아에 속절없이 유린당했다.
아르샤빈은 유럽행을 원했다. 유럽 빅리그 팀들의 아르샤빈 유혹은 거셌다. 러시아축구팬들도 그가 유럽에서 날리는 모습을 보고싶어 했다. 그의 유럽행은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그러나 너무 잘한 게 족쇄였다. 소속팀 제니트 상트페테부르크는 속으로 내주기 싫지만 겉으로 그럴 수는 없어 교묘한 혹은 당연한 태클로 아르샤빈을 붙잡았다. 몸값을 확 높여버린 것이다.
이적 협상이 난항을 겪는 사이 유럽 빅리그는 새 시즌에 돌입했다. 아르샤빈은 별수없이 러시아리그에서 김이 샌 발품을 팔아야 했다. 그의 유럽행에 새 전기가 마련될 모양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물꼬를 텄다.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한국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던 아드보카드는 최근 영국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감독으로서 아르샤빈을 붙잡고 싶지만 그에게 더 좋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유럽행에 청신호를 켰다. 아르샤빈이 유럽행 좌절 이후 소속팀에서 다소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데 대해서는 아드보카드 감독은 이해한다는 아량을 보였다. 아르샤빈은 최근 제니트에서 그의 기량을 다 보여주지 않았다. 빅클럽으로 이적한다면 분명히 뛰어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아르샤빈의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레알 마드리드행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타공인 세계최고였던 스페인의 명문구단 레알 마드리드는 이번 시즌에 총체적 부실로 흔들리고 있다. 아르샤빈의 주특기인 측면공격은 아예 실종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슈스터 감독은 최근 성적부진으로 해임됐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후안 데 라모스 감독은 잉글랜드의 토튼햄 감독 시절부터 아르샤빈을 탐냈다. 아르샤빈은 유로2008 당시 나는 FC바르셀로나의 팬이라며 바르셀로나행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는 메시와 앙리 등 세계적 날개들이 포진해 있어 아르샤빈을 위한 자리가 좁았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리그의 최대 라이벌이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