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력한 현대인의 모습

2008-12-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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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언제부터인가 노벨문학상 수상작은 잘 팔리지 않는, 소위 ‘문학성’은 높지만 ‘흥행성’은 없는 재미없고 괴팍한 작품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어떤 분야를 독창적으로 개척하는 사람들을 우대하는 문화가 서양문화라고 이해하면 사실 좀 낯설고 생소한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 뭔가를 일구어내 문학적 성과를 이룬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하겠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자칫 우리에게 버림을 받을 뻔했던 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1995년 작인데 미국에서 줄리안 무어 주연의 라는 제목의 영화로 개봉되면서 최근 주목 받기 시작해 급기야 베스트셀러 1위에까지 오르게 된 매우 문학성 높은 작품인데 영화화할 정도로 재미있고 극적이다.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사내가 갑자기 눈이 먼다. 원인불명의 실명은 마치 전염병처럼 익명의 도시, 익명의 등장인물들에게 삽시간에 퍼져버린다.

정부 당국은 눈먼 자들을 모아 이전에 정신병원으로 쓰던 건물에 강제로 수용해 놓고 무장한 군인들에게 감시할 것을 명령하며, 탈출하려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고 말한다. 이 악몽의 유일한 목격자는 수용소로 가야 하는 남편(안과의사)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눈이 먼 것처럼 위장했던 의사의 아내. 그녀는 황량한 도시로 탈출하기까지 자신과 함께 수용소에 맨 처음 들어갔던 눈먼 사람들을 인도한다.

그녀는 폭력이 난무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한 혼란스러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를 책임감으로 받아들이며, 희생과 헌신을 한다. 눈먼 사람들이 서로 간에 진정한 인간미를 느끼며 타인과 자신을 위해 사는 법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은 드디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이 소설은 권력과 폭력에 둘러싸여 무력하기 짝이 없는 한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은유인 백색 실명 상태에 빠진 눈먼 자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인간됨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인간성’에 대한 긍정을 놓치지 않고 있다. (www.aladdinus.com)

이형열/ 알라딘 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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