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0년만의 연주

2008-12-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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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자락인 11월 초순, 나는 한국을 다녀왔다. 그것도 연주를 하러 말이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면서 가라앉아 있던 연주에 대한 욕망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었다. 그동안 전공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세월을 아쉬워하며 갑자기 몹시도 연주가 하고 싶었었다.

그때 한국의 친구가 졸업 30주년 동창음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생각하고 말고가 없었다. “무조건 가는 거다” 생각만 해도 행복감이 밀려왔다. 다음날 팩스로 악보가 오고, 비행기표 예약하고…갑자기 분주해졌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대학생 때 함께 연주했던 우리가 50이 넘은 완전 아줌마가 되어 다시 연주를 한다니…


선반에서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비올라를 꺼내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너무 오래 방치해 두어 줄이나 활이 끊어지진 않았을까 염려했지만 다행히도 무사했다.

그렇게 며칠 연습을 한 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한 날이 마침 내 생일이었다. 고국에서 맞는 뜻 깊은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늦은 밤인데도 친구들이 숙소로 케익을 들고 찾아왔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고마운 친구들이다. 이번엔 연주 때문에 왔기에 공연 날까지는 일체 다른 스케줄을 잡지 않고 오직 연습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드디어 공연날인 11월3일, 오후 2시에 리허설을 하기 위해 연주회장으로 갔다. 그간 음악대학은 새 곳에 둥지를 틀었고 우리가 연주할 리사이틀 홀은 300명정도 들어갈 아담하고 아늑한 소강당이었다. 조금은 긴장된 채 무대연습을 하는데 언제 오셨는지 학장님이 오셔서 박수를 쳐 주셨다. 베토벤 바이러스 단원들보다 잘한다고, 미국에서까지 와주었으니 대단한 성의라며 칭찬해 주셨다.

저녁 7시가 되어 연주회가 시작되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조명등이 환하게 켜진 무대 위로 걸어 나갔다. 가슴이 뛰고 흥분이 되면서 조금 떨리기까지 했다. 긴장을 깨고 첫 음을 내며 우리의 역사적인 연주가 시작되었다. 30년 만에 만들어내는 우리의 화음과 열정이 20여 분간 계속되었다.
비록 우리에게 ‘강마에’ 같은 지휘자는 없었지만 우린 눈빛으로 서로의 감정을 읽으며 함께 호흡하며 함께 느끼며 연주를 했다. 관객이라야 수백명밖에 안 되는 소규모 콘서트였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의미있고 행복했던 연주회였다.

우린 연습하는 동안 행복했고 연주 땐 벅찬 감동과 환희를 맛보았다. 앵콜을 외쳐댄 팬들은 대부분 우리의 남편과 아이들이었지만 미처 앵콜까지는 준비하지 못한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무대를 떠나야했다. 우린 안다. 결코 우리의 연주가 완벽하지 못했고 최고의 연주가 아니었다는 것을. 하지만 우린 최선을 다했고 한마음이 되었으며 그 순간을 즐겼다.

나는 이 가을에 멋진 꿈을 꾸었다. 잠시 삶의 쉼표를 찍고 행복을 맛보았다. 행복은 전염된다고 한다. 나의 행복바이러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꿈과 열정의 행복 바이러스로 인해 불경기와 금융위기로 우울한 연말을 넉넉하게 이겨낼 힘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금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음악을 사랑하며 클래식을 더 가까이 할 것이다.

일레인 정

한미은행
코리아타운플라자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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